[기자수첩]유예 기간이 필요하다

장동준

“이대로 가다가는 상반기를 넘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을 지경입니다.”

 최근 만난 시화공단의 한 도금업체 사장은 쓴 소주 한잔에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원자재 가격 인상 때문에 회사 운영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이다.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시화공단의 엇비슷한 동종 업체 사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작년 내내 유가 인상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올 들어서는 도금의 원재료인 주요 금속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금의 국제 거래 가격은 6개월 사이에 40%나 급등하며 오일쇼크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리 값 역시 1년 전에 비해 50%나 뛰어올랐다. 금속 값이 원가의 80%에 달하는 도금 업체 처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자재 가격은 직격탄이나 다름없다. 원자재 가격 급등 영향은 도금 업체뿐만 아니라 인쇄회로기판이나 커넥터, 전선 등 부품 업계로 이어졌다.

 원가 부담은 부품 업계를 압박하고 있지만 고객인 세트 업체는 이를 감안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판가 인하 압력이 서서히 나오는 분위기다. 모 인쇄회로기판 업체 사장은 “가격 인상을 제안하러 세트 업체에 갔다가 판가 인하 방침이 조만간 내려온다는 구매 담당자의 말을 듣고 얘기도 꺼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판가 인하 압력이 덜해 다행이다. 작년 벽두부터 두 자릿수의 판가 인하를 강행했던 대기업이 올해는 아직 인하 방침 통보를 미루고 있다.

 기업이 원가 절감을 위해 협력 업체에 판가 인하를 유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기업이 판가 인하 카드를 내놓기보다는 협력업체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조건 봐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업계에서 기술 경쟁력이 선두권이고 원가절감을 위해 특단의 방안을 내놓는 업체에는 자구책을 마련할 기회를 줘야 한다. 더욱이 갑과 을의 서슬 퍼런 종속 관계 하에서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발표하고 있는 2006년 초, 지금은 유예기간이 더욱 절실하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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