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가전시장에서 마이너였다. TV와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선진국 제품을 분해, 조립해 보기가 다반사였다. 우리 연구원들이 핵심기술을 알기 위해 일본업체의 쓰레기장을 뒤진 일화는 두고두고 비웃음거리가 됐다.
그러나 불과 15년 만에 판도는 180도 바뀌었다. 외국 사람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브랜드를 들으면 ‘초일류’를 떠올린다. TV와 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세계 가전시장에서 삼성과 LG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놓고 결승전을 벌이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들이 개발한 최첨단 프리미엄 가전은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이나 유럽의 생활 문화까지 바꿀 정도다.
이 같은 변화의 진원지는 ‘디지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최초·최대·최고 등의 타이틀을 건 최첨단 디지털가전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면서 세계 가전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소니·마쓰시타 등 아날로그 시대 최강자였던 일본 업체들도 디지털시대에선 한국업체에 밀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TV시장 점유율에서 판매량과 매출액에서 1위를 휩쓸었다. LG전자는 가정용 에어컨 시장에서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세탁기·냉장고 등은 전세계 34개국에서 삼성과 LG가 상위권에서 다투고 있다. 드럼세탁기·양문형냉장고 등 프리미엄 디지털가전은 전통의 강호 월풀·GE 등 미국 업체들마저 따돌렸다.
디지털가전의 헤게모니를 거머쥐면서 차세대 컨버전스 시장도 주도하고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이 차세대 홈 네트워크시장 가전업체 파트너로 삼성과 LG를 꼽았다. TV·DMB·MP3플레이어·캠코더 등을 한꺼번에 구현한 ‘올인원 가전’에서도 한국이 한발 앞서가고 있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얻은 중소 가전업체들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올해 PDP·LCD·프로젝션·슬림 브라운관 TV 등 프리미엄 디지털TV 전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이다.”(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가정용 에어컨에 이어 2010년에는 시스템 에어컨에서도 넘버 원을 차지하겠다.”(이영하 LG전자 사장)
‘디지털가전 왕국’ 한국의 질주는 새해에도 거침이 없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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