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애인

성현아 조동혁의 ‘애인’은, 꼭 ‘비포 선라이즈’의 섹스 버전같다. 우연히 좁은 공간에서 처음 부딪친 두 남녀가 하루 밤 동안 사랑을 나누다가 다음 날 아침 각자 기약 없이 헤어진다는 점에서 ‘비포 선라이즈’와 기본 컨셉은 같다. 그러나 ‘비포 선라이즈’에는 없는 것이 ‘애인’에는 있다. 그것은 넘쳐나는 섹스신이다.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두 남녀가 여름밤을 함께 보낸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면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비포 선라이즈’ 속편 격인 ‘비포 선셋’을 보면 그때 두 사람 사이에 섹스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애인’에는 노골적으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두 남녀는 오직 섹스만을 생각한다. 비록 환상신으로 등장하지만, 여자는 비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처음 남자를 보고 그 남자가 자신에게 기습적 키스를 시도하며 섹스를 시도할 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한다.

‘비포 선라이즈’가 쿨하게 와 닿았던 것은, 두 남녀가 본능적 이끌림에 하루밤의 만남을 갖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정서적 배려와 이성적 판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인’은 처음 만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쿨한 척 온갖 폼을 다잡는다. 오직 자극적 성애 장면만 반복해서 드러내 보여준다.

마치 삼류 신문 연재소설에서 독자들이 지루해할만하면 등장하는 섹스신처럼, ‘애인’속에서는 화면이 지루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섹스신이 등장한다. 여자 역을 맡은 성현아의 배 위에 질외사정되는 정액은 물론, 성현아의 측면 헤어 누드까지 보이는 ‘애인’은 그러나 에로 영화들보다는 한 수 위다. 그것은 전적으로 미술을 전공한 감독의 미장센 때문이다.

예술마을 헤이리 일대에서 촬영된 영화 속의 각 신들은 미학적 쾌감을 안겨줄만큼 미학적 구도가 빼어나다. 감독의 예술적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는 있지만 그러나 영화는 고정된 스틸 샷의 그림 모음이 아니다. 그리고 섹스 장면도 천박하지 않다. 즉 포장술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이것이 ‘애인’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다.

결혼을 한 달 앞둔 여자와, 건축 사업을 하다 정리하고 내일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한 남자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후 다음날 아침 헤어질 때까지, 하룻밤의 충동적 섹스 행위를 그리고 있는 ‘애인’은, 그럴듯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음란한 척 하고 저속한 척 하며, 그것 보다는 무엇인가 그럴듯한 사랑의 새로운 시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하는, 스노비즘으로 가득찬 영화다.

낯간지러워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유치한 대사들, 치졸한 장면 설정들, 이미 여기저기서 본 낯익은 이야기들이 그 속을 채우고 있다. 마리아상 앞에서 즉석 결혼식을 시도하는 것은 김유진 감독의 ‘약속’을 비롯한 멜로 영화의 전형적 공식이고, 와인 바에서 돈이 없다고 와인 한 병을 공짜로 얻는 설정은 ‘비포 선라이즈’의 후반부를 베낀 것이며, 특히 마지막 신, 택시를 타고 가던 여자가, 신호등 앞에서 차가 정지하자 문고리를 잡고 열까 말까 망설이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마지막 신을 표절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패러디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메릴 스트립이 차의 문고리를 잡고 갈등하면서 폭우를 맞고 자기를 바라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는 신의 패러디라고 부르기에는 독창성이 부족하다. 이것은 단순한 베끼기다.

감각적인 뛰어난 미장센, 성현아와 조동혁의 힘찬 연기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문제는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다. 왜 죄의식 없이 다른 영화의 장면들을 훔쳐오는가. 오마쥬라고 볼 수도 없고 패러디의 새로운 해석도 없고 오직 비슷한 흉내내기에 불과한 마지막 신을 보면서, 나는 ‘애인’이 갖고 있는 상상력의 치명적 결핍을 비판한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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