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근 감독의 ‘연애’가 올해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한국 영화 중 하나라고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연애’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일상,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숨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제작비 2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물량 규모가 비대화 된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 안에서, 작지만 이처럼 의미 있는 영화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연애’는, 무엇보다 비루하고 통속적인 우리들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인생이 멋있는 거라고 믿는 당신이라면, 인생에는 눈 앞에 보이는 낡은 일상 이외의 다른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연애’는 비로소 당신의 참다운 모습을 비춰줄 것이다. 어쩌면 영화 ‘연애’ 속에 비친 당신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당신 자신의 아픈, 초라한,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10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든 오석근 감독의 놀라운 내공은, 침착하게 주제를 드러내는 깊은 시선에서도 느껴진다. 그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연애’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전화방·보도방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 욕망의 하수구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오석근 감독은 결코 소재의 선정성이 손짓하는 강렬한 유혹의 시선에 빠지지 않는다. 감독은 철저하게 소재를 장악하며 주제의 효과적 드러냄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
어진(전미선 분)은 전업주부다. 그녀는 남편의 빚 때문에 어려워진 가정경제를 구하기 위해 집에서도 구슬을 달며 힘들게 산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그녀는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한다. 전화방으로 걸려오는 온갖 남자들의 음담패설은 물론 스트레스에 지친 그들의 시비를 견디어 낸다. 어진은 밀린 돈을 받으러 전화방에 갔다가 단란주점에 미시족들을 공급하는 보도방 사장(김지숙 분)을 만나게 되고 큰 결심을 굳힌 후 보도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미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 민수(장현성 분)는 어진과 친구가 되고자 한다. 어진이 처음으로 2차를 나가 관계를 가진 것도 자신을 배려해 주는 민수의 마음 씀씀이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보도방에서 룸살롱으로 공급된 여자와 소님의 관계로 만난 그들의 연애가 잘 될리 없다. 내러티브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연애’의 놀라운 점은, 소재 자체의 새로움이나 연출의 파격적인 실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현상 이면을 깊게 응시하고 그것의 참 모습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오석근 감독의 진정성이 이 영화가 단순한 범작에 그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연출의 의도에 협력하는 배우들의 울림 있는 연기는 ‘연애’를 통속극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연기생활 16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전미선의 연기는, 더 이상 칭찬할 수 없을만큼 좋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송강호의 애인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왜 이렇게 뒤늦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까 아쉬움이 들 정도이다. 빚에 쪼들리며 곤궁한 삶을 영위하는 가정주부에서, 보도방 여자로,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손님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연애로 갈등하는 한 여인의 내면을 울림 있게 표현하고 있다. 전미선의 상대역인 장현성의 연기도 좋지만, 또 한 사람, 연극무대의 거목인 김지숙의 연기가 없었다면 어쩌면 ‘연애’는 밋밋해졌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쓰리섬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자극적 부분이지만, 오석근 감독은 잦은 페이드아웃으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울림을 증폭시킨다. 페이드아웃으로 맥이 끊기고 이야기가 섬처럼 고립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여백을 남길 수 있는 효과적 장치로 활용된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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