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피겔 주간지의 보도로 다시 김정일의 후계 문제가 관심거리다. 슈피겔의 보도는 두 가지 관점에서 관심을 끈다. 우선 지난달 말 평양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만찬에 둘째 아들 김정철(24)을 배석시켰다는 그럴 듯한(?) 내용이다. 또 보도매체가 독일 외신이라는 데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전자는 “북한은 지난 여름쯤 중국에 김정일 후계자 결정을 통보했으며, 중국은 위대한 민족의 후계자 결정을 충심으로 축하한다”는 찬사를 북한에 보냈다는 일본 월간지의 추측보도와 함께 후진타오와의 만찬에서 김정철을 배석시킴으로써 후진타오에게 선을 보였다는 것이 추론의 근거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화면에서는 김정철과 유사한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정철의 사진이나 외모 등이 공개된 전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화면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또 후진타오와의 비공개 만찬에서 김정철이 동석했다는 소식도 있다. 정부도 조선중앙통신의 화면에서 김정철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음은 슈피겔지가 평양에 괴테문화원을 운영하여 북한 내부 소식에 비교적 밝은 독일의 언론이라는 점이다. 독일은 유명한 여류 작가 루이저 린저가 김일성 주석과 교분을 나누는 등 북한과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다. 따라서 서방 국가 중에서는 북한 내부에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다. 지금은 북한 정권 타도에 앞장서고 있는 독일인 의사 플러첸도 초기에는 북한의 허락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자유롭게 활동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김정철의 만찬 참석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보도를 계기로 김정일의 후계체체 문제가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철의 부자 3대 세습을 위한 조건을 과거 김정일의 세습과 비교하는 것은 앞날을 예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김정일은 권력을 세습 받았다기보다는 쟁취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964년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당조직부 지도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비공개리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께다. 1969년 김정일은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원로들의 거부감을 약화시키고 3대 혁명 소조를 통해 세대교체에 주력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1974년 2월 김정일은 서른둘의 나이로 당중앙위원회 제8차 전원회의에서 권력 2인자로 거론되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를 제치고 비밀리에 ‘공화국 영웅’이란 칭호도 받고 정치위원으로도 선출됐다.
이때 김정일을 가리키는 ‘당중앙’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1974년 10월 비밀리에 당중앙위원회 제5기 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은 정치위원 겸 조직사상 비서의 자격으로 유일지도체제의 확립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보고하였다. 그 이듬해인 1975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10차 전원회의에서 후계문제가 공식 확정됐다. 1967년 후계문제가 표면화된 이후 8년 만이었다. 그 후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부동의 2인자 위치를 20년간 유지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권력의 이중 정권보다는 김정일의 권력이 김일성의 권력을 앞질렀다는 평가도 있다.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은 아버지 김일성의 눈에 효자둥이로 비쳐지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면서도 삼촌 김영주, 이복동생 김평일 등 곁가지들을 철저히 제거하는 장편 드라마였다. 김정일은 철저히 현실주의 접근방식으로 아버지의 환심을 사면서 경쟁자들을 처단하여 권좌에 올랐다. 권모술수와 정적(政敵) 제거 등 이조시대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권력투쟁의 모습이었다.
이와 대비하여 김정철이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대적으로 장남인 김정남이 돌출된 행동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났고, 셋째 김정운은 너무 어리고 유약하다는 평가 때문에 김정철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권력을 물려받을 자질이 검증된 것은 아직 없다. 문제는 권력은 아버지가 준다고 해서 계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일은 김정철의 옹립을 위해서 노동당에 특별조직을 신설했다고 한다. 노동당 6과 7과에서 30대 젊은 간부들이 김정철의 친모인 고영희 우상화 작업과 함께 다양한 권력승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상화 작업으로 3부자 세습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최종 승계 여부는 본인의 능력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급격한 변동을 바라지 않는다. 중국은 3부자 세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정철이 권력을 장악하여 한반도 북반구를 안정적으로 통치하여 화평굴기(和平掘起)를 선언한 중국 발전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김정철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제3의 인물을 내세울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 후계자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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