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본지에 ‘좌백의 무림기행’을 연재하며 무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국내 무협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좌백과 마주 앉아, 지면을 통해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얘기와 무협 작가로서의 현재 본인의 위치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겉으로 풍기는 강한 인상과 달리 항상 노력하는 자세와 무협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으로 밤을 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의 모습이었다.
좌백의 집은 서울 한복판 합정동에 있다. 무협 작가라면 산 속에 은거해야 마땅할 것 같으나 그는 무협이기 전에 작가이며, 작가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다. 얼마 전 이사한 그의 집은 깨끗하고 넓었으며 특히 도배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 집안을 가득 채운 만권 가까운 책이 인상적이었다.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 좌백의 첫 마디는 무협 작가로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 머물지 않고 앞으로 전진
“얼마 전 제가 철학책을 하나 냈습니다. 저의 전공과 관계가 있지만 무협 작가도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지요. 앞으로 무협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 가지 문학으로 다양하게 뻗어 나가야만 합니다.”
그가 말한 철학책은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이다. 철학은 조금만 어려워도 일반인들은 전혀 알아 듣지 못하고 너무 쉬우면 또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중간에 서서 논리학에 대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했다. 여전히 하위 문학으로 천대받는 무협이지만 그런 작가도 이런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철학책을 만든 이유다.
이 외에도 좌백은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일반 소설, 온라인 게임 시나리오 등 범위를 확대해 무협을 녹여 놓는 작업이다. 쉽지 않겠지만 무협의 미래를 위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굳이 무협이라는 무기를 꺼내지 않아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좌백의 무림기행’도 이러한 고민의 표출이었고 앞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색다른 시도를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 등록금 마련 위해 시작
“하하하….”
왜 하필 무협 작가가 됐냐는 질문에 좌백은 대답 대신 큰 소리로 웃었다. 왠지 사연이 깊어 보였다.
“대학원을 가고 싶은데 돈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무협 소설을 좀 써서 등록금을 벌고 싶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무협 출판사를 무장적 방문해 견습생으로 일을 해도 좋다는 승락을 간신히 받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딱 맞았다. 묘한 자신감에 가득 차 무협 소설이야 금방 써서 팔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또 기존 무협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좌백은 출판사에서 지침하는 설정을 모두 거꾸로 잡았다. 주인공은 전혀 멋지지 않았고 반항적이고 무술도 강한 편이 아니었다. 로맨스는 물론 없었고 팬터스틱한 영웅 이야기도 설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쓴 무협 소설은 출판사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한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출판사 사장은 주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좌백을 믿었고 출판을 강행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소설이 그 유명한 ‘대도오’다.
“한국 무협은 정체되기가 쉬워요. 한번 인기 작가 대열에 오르면 잘 팔리는 책만 만들죠. 정해진 구도와 틀에 박힌 주인공, 무협 특유의 로맨스 등 출판사가 아예 정해줍니다.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의 고집과 무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첫 작품으로 유명 작가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 없는 연구와 실험적인 자세로 국내 무협의 한계를 깨는 작품을 여러 권 발표했다.
# 팬터지로 발전하는 것이 마땅
국내 무협에는 왜 한국을 무대로 삼는 작품이 없는가? 이 질문에 좌백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국내 배경에 대한 작품에 유달리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과 일제강점기, 그 이전에 조선 시대의 어지러운 정치, 또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라져 있던 삼국시대까지 그 어떤 시점을 잡아도 너무 무겁다고 했다. 왜 하필 신라가 통일해서 지금 이 지경까지 왔느냐는 말도 있듯이 우리 국민들은 현실과 현실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사까지 무협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 일단 무대를 설정해도 당시의 사실성을 엄청나게 따지기 때문에 구현하기가 힘들 뿐더러 무협이라는 자체가 포함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다고 말했다.
“조선 시대의 한 기록을 보면 유명 산을 기점으로 방파가 존재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무협 이야기를 쓸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작가와 출판사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입니다. 결국 현실 도피처럼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작성할 수 밖에 없죠.”
그는 한국적 무협을 완성하는 것보다 미래의 무협을 고려한다면 팬터지처럼 더욱 더 환상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것은 일본 작품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결코 머무르지 않고 앞을 보며 달려 나가는 작가 정신이 중요합니다. 무협에 한계는 없습니다.”
일본 작가들은 삼국지나 서유기를 재해석해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며 전진한다. 그림이나 인물 설정도 완전히 색다르다. 좌백이 말하는 무협의 미래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많이 본 뉴스
-
1
삼성전자, 1분기 D램 가격 인상률 '70→100%' 확정…한 달 만에 또 뛰어
-
2
삼성 갤럭시S26 사전판매 흥행…신기록 기대
-
3
단독SK-오픈AI 합작 데이터센터 부지 '광주 첨단지구' 유력
-
4
“용량 부족 때문에 스마트폰 사진 지울 필요 없다”...포스텍, 광 데이터 저장기술 개발
-
5
'메이드 인 유럽' 우대…비상등 켜진 국산차
-
6
속보증시 급반등에 코스피·코스닥 매수 사이드카 발동
-
7
중동發 위기에 기름값 들썩…李대통령 “주유소 부당한 폭리 강력 단속”
-
8
“메모리 가격 5배 급등”…HP “AI PC 확대” vs 델 “출고가 인상”
-
9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JP모건 IPO 주관사 선정
-
10
DGIST, 세계 최초 '수소'로 기억하고 학습하는 AI 반도체 개발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