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30·끝)무협의 재미 `무림 이야기`

연재 마지막 회를 맞아 정리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무림기행은 게임 매체에 연재되는 것이고, 따라서 필자는 이것을 무협게임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무협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는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써왔다. 우연히 보게 된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무협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써왔다는 말이다. 그런 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무협인가? 왜 무협을 읽고, 보고, 게임으로 즐기고, 혹은 만들려고 하는가?

필자는 무협작가로 십여 년 간 작품활동을 해왔고, 무협게임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편으로는 무협의 역사와 자료에 대해 방대한 조사활동도 해왔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연재기사처럼 무협을 소개하는 칼럼도 연재해 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 그것이다.왜 무협인가? 무협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협은 재미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대답이 안 된다. 팬터지도 재미있고 미스터리도 재미있다. 게임도 재미있고 영화도 재미있다.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담은 본격문학 중에도 재미있는 것은 수없이 많다. 재미의 범위와 층차는 너무나 다양해서 단지 재미있다는 한 마디로는 무협만의 고유한 매력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단언해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순수하게 필자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고 말하자면 무협의 재미는 이야기의 힘에서 나온다. 동어반복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그 힘에서 재미가 나온다. 여기에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없고, 현실에 대한 반성도 없고, 깊이 있는 철학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 것보다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 더욱더 독자와 관객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적어도 이걸 보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이 어느정도 성공하면서 성립되는 것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무협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전기문학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진짜인지는 묻지 마시라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힘은 팬지에서도, 미스터리에서도 공히 발휘될 수 있고, 실제로 발휘되는 요소다. 이들과 다른 무협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무협만이 발휘하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독특함은 무림이라는 배경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협을 즐기는 독자, 혹은 관객은 그냥 복수극, 그냥 영웅담, 그냥 드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림이라는 이 독특한 세계 위에서 벌어지는 복수극, 영웅담, 드라마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무협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무협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무엇이나 가능하던 시절을 말해주는 옛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에게 홍길동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자객 형가가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무협이 그들에게는 역사일 수도 있다. 장길산이나 임꺽정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라. 딱 그와 같은 것이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곽정이니 진근남에게 있는 것이다.

대만과 홍콩에 있어서 이건 또 다르다. 지금처럼 중국이 개방정책을 펴기 전에는 대만, 홍콩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중국이란 동경의 땅이었다. 수많은 대만과 홍콩의 무협작가들이 그렸던 무림이란 직접 가보고, 살아보고 쓰는 생생한 현장기록이 아니라 가보지 못한 땅, 상상 속에서 미화된 땅이었던 것이다.한국에서 이러한 거리감, 비현실성은 극단적으로 커진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의 무협이란 팬터지와 다름없다. 비현실적인 공간, 환상 속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모습들이 대충 얽혀진 시공간에 무협적 환상이 한 겹 덧씌워진 데다가 한국인이 중국을 생각하는, 홍콩 영화를 통해서, 혹은 무협소설 그 자체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을 통해 왜곡되어진 세계, 그것이 무협이 배경으로 하고있는 중국과 무림의 이미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과 무림이라는 공간은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현실의 한 곳, 한 국가가 아니라 허구적 공간개념이 된다. 그것은 현대 소설에 있어서 ‘있을법한 허구’를 드러내기 위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로망스적인 비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공간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현실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몰입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한국인에게 있어서 한국이라는 땅은 현실이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현실이다. 미디어에서는 매일같이 북한 핵문제를 말하고 미국, 중국, 일본과의 갈등을 다룬다. 저 북한산과 지리산에는 주말마다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인간이 밟지 않은 땅이 없다.

한국의 중악 숭산이라고 할 서울 남산에는 소림사 대신 남산타워가 서 있다. 이런 공간에서 비현실을 꿈꾸기란 너무나 어렵다. 현실의 무게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비현실이 왜 필요한가?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현재와 현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심지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법칙과 나라는 존재, 그 자기정체성에서조차도 이탈함으로써 상상력은 자유를 얻게 되고, 억눌린 욕망들이 그 대상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위안을 찾고, 때로는 그 터무니없는 과장들과 허상들 속에서 진실한 자기를 마주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무협에 있어서는 역사적 고증이나 실제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리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오히려 필자는 저렇게 확보된 비현실의 공간에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더 자유로운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무림이라는 세계를 꾸며가는 것이 이 시점에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 대체 무협의 역사니, 설정이니 지금까지 29회에 걸쳐 말해왔던 것은 무엇인가? 그건 그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무협이 만들어왔던 다양한 세계와 문화, 그 속에서 다루어졌던 이런 저런 기제들을 모르고도 비현실적인 공간 자체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협적’인 비현실은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알고, 그걸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변증법적 과정이 이 시점에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무협이라는 장르가 태생적으로 안고있는 무국적성이라는 단점을 능동적인 비국적성으로, 중국도 한국도 아닌 동양적 팬터지 공간으로서의 무림창조가 가능해질 것이다.

긴 연재기간 동안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과 ‘더 게임스’에 감사드립니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이미 알려진 세계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일본만화가 탁월하다. 서유기를 재해석해 만들어낸 만화 ‘최유기’

◇ 상상력이 움직이는 공간에는 제한이 없다. 아득한 먼 옛날 우주에서...로 시작하는 스타워즈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 이미지만 차용해서 아예 무대를 옮겨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도 있다. ‘아라한장풍대작전’

◇ 재해석 뿐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철학을 불어넣어 거의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품 ‘창천항로’. 삼국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 고대의 무사가 현대에 되살아나서 활약한다는 이야기 역시 무협의 재해석 방법 중 하나다. 영화 ‘진용’

◇ 삼장법사와 세 제자가 이런 식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데서 상상력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 무협의 선조 중 하나인 봉신연의를 재해석해서 만들어진 만화 ‘봉신연의’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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