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용산 전자랜드. 가전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1층 매장에는 삼성과 LG 로고가 새겨진 PDP TV와 LCD TV들이 똑같은 자연 다큐멘터리 화면을 내보내며 도열해 있다. 매장 직원에게 “소니 TV는 없냐”고 물었더니 “에이, 누가 요즘 일본 TV 보나요. 삼성과 LG가 성능이 훨씬 좋은데”라며 국산 제품을 추천한다.
한때 ‘TV 하면 소니, 세탁기 하면 월풀’을 떠올리던 소비자 인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소니나 월풀 대신 삼성과 LG 제품을 ‘구매목록 1호’에 올리면서 전자제품 전문 매장에 외산가전이 자취를 감추는 이른바 ‘신국산품애용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국산제품의 높은 품질과 브랜드 파워로 인해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호소하던 국산품애용운동도 이젠 옛말이 됐다.
전자전문점 하이마트가 올 9월까지 판매한 TV 가운데 국산은 전체의 95%를 차지한 반면 소니 등 일본 제품은 5%에 불과했다. 일본 TV 판매 비중은 지난해 7%에서 올해 5%로 떨어져 인기는 갈수록 시들해지는 양상이다.
가전양판점 테크노마트에서는 일본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수입 가전 매장 188곳 중 10곳이 지난달부터 일본 브랜드 판매를 중단했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일본 전자제품의 매출이 급속히 줄면서 전시 품목에서 일본 제품을 제외하거나 아예 판매를 중단하는 유통업체도 늘고 있다”며 “2000년대 초까지 가전 매장에서 일본 브랜드 비중은 30%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5% 안팎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고급가전 제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에서도 국산 가전의 인기는 뜨겁다.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 본점의 1∼9월 가전제품 매출은 삼성전자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 LG전자가 10% 증가한 반면 일본 소니는 30% 감소했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삼성이나 LG의 가전제품의 품질이 세계 수준으로 높아진 데다 세계 최초·최대·최고 등 첨단기술을 강조한 홍보·마케팅으로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파워가 커졌기 때문”이라며 “에어컨·세탁기는 LG, TV는 삼성 등 소비자들은 가전을 구매할 때 국산 브랜드를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가 산정한 브랜드 가치에서도 삼성은 올해 149억달러로 세계 20위를 기록, 28위를 차지한 소니(107억달러)를 눌렀다.
LG경제연구원의 김영민 상무는 “최근 중국산 저가 가전의 공세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휴대폰 빅6가 저가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듯 싸구려를 사도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는 게 소비자들의 심리”라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로 형성된 국산품애용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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