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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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4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는 여느 때와 다르게 들뜬 분위기와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해 10월 꾸려진 ‘16기가 개발팀’의 팀원들은 물론, 황창규 반도체총괄사장·유병일부사장·김기남 전무·최정혁상무 등 모든 임직원의 눈이 인트라넷으로 연결된 PC 모니터에 고정돼 있다. 팹에서의 테스트 결과는 인트라넷을 통해 사무실에서도 모니터로 확인된다.

다음 순간, PC 모니터상에서 지구촌 메모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16기가비트 낸드플래시 워킹다이의 마지막 164억 개째 트랜지스터까지 완벽하게 동작하는 것이 최종 확인됐다.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를 반도체가 개발된 지 47년만에 30억배로 높인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병일 부사장이 황창규사장 방을 노크했다. 다시 한 번 ‘황의 법칙’이 실현됐음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보고를 받는 순간부터 황 사장의 머리 속에는 이번 16기가 개발을 일궈낸 팀원들을 위해 그들 몰래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을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황사장님은 환경에 대한 핑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필사즉생’을 강조하면서 밀어 부치시지요. 사실 한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밤·낮·주말 이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목표가 달성되면 직원보다는 안에서 희생한 가족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지요. 집에 돌아와 그런 사실을 들으면 피로가 확 풀립니다.” 16기가 프로젝트를 담당한 최정혁상무(메모리사업부 차세대연구팀)의 말이다.

“목표를 위한 목표는 무의미합니다. 목표는 달성을 통해 진화해 나가는 것이지요.”

1년에 한 번씩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는 황창규 삼성전자반도체총괄 사장(52)은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건 혹시 허풍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러나 황사장은 매번 실제 성과를 내놓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짐으로써, 유머와 위트로 희석되는 약점(?)을 극복해 낸다.

황 사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온화한 표정. 그에게는 적이 없다. 깔끔한 매너도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일단 강연이나 대화를 시작하면 그만한 달변이 없다.

“중요한 약속이라 취소할 수도 없고 해서, 집안 제사를 1시간 당겨 지내고 달려왔습니다.”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내며 시간을 쪼개 쓰기로 유명한 황 사장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조상을 모시는 일은 반드시 챙긴다. 요즘 집안에서는 보기 드문 ‘4대 봉사(奉祀)’를 한다.

최첨단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든 그의 모습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제사 모습.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이지만, 황 사장은 ‘전통과 첨단의 조화’를 매우 중시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고, 조상이 없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는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황 사장의 할아버지는 사군자 중 매화 부문의 일가를 이룬 구한말 화원화가 황매선(黃梅仙) 선생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개발한 16기가비트 낸드플래시는 매일 한 장 씩,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사진을 손톱크기의 한 개 칩에 담을 수 있는 획기적인 용량이다. “이제 두뇌는 창조적인 일에만 사용하세요. 모든 기억은 반도체가 책임집니다.” 메모리반도체를 통해 인간의 생활 패턴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아직 전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들이 응용되고 실험되고 했다는 점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확보하는 반도체기술은 이제 ‘개발’이라는 표현보다 ‘창조’라는 표현이 걸 맞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그 중심에 ‘황창규’가 있다.

‘황의 법칙’ ‘미스터 플래시’ ‘100기가 메모리와 함께 하는 해외 출장’ 등 다양한 별명과 이슈를 몰고 다니는 황 사장. 유럽 출장 중인 황사장은 지금 이 시각, 바쁜 해외 출장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시간 오페라를 즐기며 ‘또 다른 세계 최초’를 구상하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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