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한 민족의 정체성을 띠는 문화로 존속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정부가 자국어를 얼마나 보호하고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과 의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프랑스는 가장 강경하고 다양한 자국어 보호대책을 펼치는 나라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28일부터 언어 파괴와 오염을 막고 국어를 보전 발전시키기 위해 ‘국어기본법’의 시행에 들어갔다. 6개월간의 예고기간을 거친 이 법은 ‘공문서의 한글 전용’ 규정뿐 아니라 우리말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분명히 규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부처와 지자체들의 한글 사용실태를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국어기본법의 시행에 따라 예전 공문에 많이 쓰였던 한문만 쓰는 사례는 사라지고 불가피하게 한문을 써야 할 경우 한글을 먼저 쓰고 한문을 병용하고 있다.대신 한문이 빠진 자리를 영어가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영문 약어만 쓰는 사례가 빈번해 국어기본법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를 들면 교육부의 ‘2006년 교육정보화 촉진시행계획안’을 보면 ‘One-stop 서비스’ ‘DRM 시스템’ ‘dCollection 시스템’ 등 한글로 써도 될 단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굳이 영어로 쓰고 있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바른 한글 사용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가 이 정도니 타 부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 기관 홈페이지는 더욱 심각하다. 영문페이지를 따로 두고 있으면서도 굳이 국어 홈페이지까지 영어가 난무하고 있다. ‘국어기본법’에 대해 정부기관들이 취지에 동의하고 이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외국에 한국을 알리기 위해 슬로건으로 채택하고 있는 ‘Dynamic Korea’의 영향 때문인지 한글 대신 ‘Hi Seoul’ ‘Dynamic Busan’ ‘Colorful Daegu’ ‘Tour Partner Gwangju’ ‘It` s Daejeon’ 등 영어 슬로건이 난무한다. 영어 슬로건만 쓰면 도시가 세련되고 국제화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한류 붐에 따라 한글을 배우겠다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몽골, 러시아 등에서도 한글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정작 국내에서는 한글을 도외시하고 영어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는 세태에 대해 외국인들은 이상하다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글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새겨야 할 대목이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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