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에서 배운다](6)사토 겐이치로 로옴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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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간사이(關西) 공항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교토식 경영의 발상지인 일본 로옴(Rohm)을 가기 위해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다시 JR선을 타고 한시간 십여분 달려 교토에 도착했다. 다시 도심으로 10여분 가서 도착한 곳은 공장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돈된 로옴 본사였다.

 그 곳에서 만난 사토 겐이치로 사장(佐藤硏一朗)은 기자와의 첫 대면부터 여러가지를 생각케 하는 화두를 던졌다. 그것은 두말할 것없이 우리나라 벤처기업에게 던진 화두였다. “백년을 침대에 누워 살겠습니까? 50년을 발로 뛰며 살겠습니까?” 연륜을 넘어 그의 입에서 너무나 결의에 찬 물음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 당당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곧 교토식 경영의 핵심인 것을.

-로옴은 50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창업이후 적지 않은 파란을 겪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를 극복한 경영의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이 IMF 당시 위기를 극복한 것과 같다. 로옴의 가장 큰 위기는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2차 오일쇼크’였다. 그 당시 심각한 경영위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이 IMF위기를 넘긴 것과 같이 로옴 역시 전직원의 노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특별히 경영의 노하우를 발휘한 것은 없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 닥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그 것이 곧 기업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교토식 경영’이 관심을 끌고 있다. ‘교토식 경영’이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 안에서 로옴은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교토식 경영’은 누가 주창했다기 보다 교토내 기업들의 공통점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지리적 역할이 크다. 교토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수도인데다, 상업도시인 오사카와 근접해 있다. 또 교토 시내 대학만 50개 정도에 이른다. 이는 곧 우수 인력을 언제든 채용할 수 있는 입지적 요건이 타 지방에 비해 유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교토지역의 특징이라면 ‘인내심’이 강한 장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지적 수준을 요하는 산업, 인내력을 요하는 산업이 맞아 떨어져 오늘의 교토기업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반면 도쿄의 지역적인 특징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로옴은 이러한 교토와 도쿄의 양면을 수용하고 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기업의 영속성이자 성장의 기본이다.

 -‘교토식경영’의 중심에 선 로옴의 장점 세가지만 든다면.

 △먼저 품질우선·중시이다. 제조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 고객소중·만족이다.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이 없다면 기업의 이윤은 창출될 수 없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만 기업은 살아 남을 수 있다. 세번째, 젊은 역량으로 새로움에 대한 추구이다. 과거의 시장에만 안주해 있으면 ‘답보’가 아닌 ‘퇴보’이다. 로옴은 젊은 인재를 소중히 여긴다. 그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경영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50여년 경영을 하면서 꾸준한 성장을 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독특한 경영철학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핵심은 무엇인가. △일본 속담에 ‘바쁠때 일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 것을 기업에 적용해 볼때 화려한 꽃만 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표면의 화려함만을 쫓는다면 그 기업의 영속성은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뿌리가 있어야 하고 그 뿌리가 땅속 깊이 내리려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벤처기업, 즉 이제 시작하는 기업이나 성장을 꿈꾸는 기업들은 무엇보다 ‘뿌리 내리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허약한 뿌리에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것을 두고 ‘콩나물’에 비유한다. 기업의 화려한 이미지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콩나물’과 같이 허약한 뿌리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어려울 때나 성장의 가속도를 붙일 때나 기업의 근본 경쟁력은 확보해야 한다. 그 위에 새로운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만 경영의 보너스가 얻어진다.

 -기업경영 모토중 ‘신뢰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었는데.

 △그것이 곧 삶의 질이다. 최종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기업이 있고 뒷단에서 간접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기업이 있다. 로옴은 간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기업이다. 세트에 가려 부품으로서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의 고객이 만족하는 순간을 위해 로옴은 노력한다. 그것이 곧 신뢰성이다. 살아있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우리의 존재가치다. ‘백년을 침대에 누워 있는 것보다 50년을 발로 뛰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로옴의 직원들은 인식하고 있다. 또 인식시키고 있다.

 -엄한 가정에는 그에 맞는 가훈이 있다. 로옴의 창업 당시 사훈과 현재의 사훈은 어떻게 변했는가.

 △기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은 변할 수 없다. 나무를 생각해 보라. 잎사귀와 꽃은 매년 피고 지지만 줄기와 뿌리가 변하는 경우는 없다. 기업은 나무와 같다. 나무가 성장하기 위해 매년 잎사귀와 꽃을 떨궈 버리지만 결코 뿌리와 줄기를 바꾸는 일은 없다. 이 것이 경영의 진리다. IT버블 당시 많은 기업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일시적인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업들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벌었겠지만 경영을 했다고 할 수 없다. 철학이 없이 ‘롱런’을 기대하기 힘들다.

 -부품업체로서 세트사업에 대한 욕심도 있을 텐데, 창업이후 여러 사업 진출에 대한 제의나 고민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받은 느낌은 남의 집에 신발을 신은채 들어가는 것과 같은 무례함이었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에 앞서 우리의 고객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하는 반성이 앞섰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서 사업영역만 넓혀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의 고객이 만족을 넘어 감동을 받을때까지 정성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윤리이고 정신이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이 것만은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표적인 몇가지만 들어달라.

 △문제 없는 기업은 없다. 문제를 매일매일 해결해 나가는 것이 경영이다. 만약 문제가 몇가지에 불과하다면 사장의 존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몇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에 사용한다면 경영인인 나로서도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 경영을 해왔지만 아직도 문제는 매일매일 생긴다. 경중은 있을지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를 양성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재는 기업의 자산이고, 미래다. 그래서 현재 힘쓰고 있는 부문이 인재양성,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재교육의 방향이다. 로옴이 50년을 왔다면 앞으로 50년을 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바로 인재양성이다. 물론 내가 앞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웃음)…

 -교토식 경영이 한국의 재벌 체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장·단점을 비교한다면.

 △한국의 재벌을 문어발에 비교한다. 하지만 난 지네발에 비교하고 싶다. 지네는 양쪽으로 50개, 총 100개의 다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네의 다리가 엉키는 경우는 없다. 문어 역시 발이 10개지만 2개는 손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10개의 손과 발이 서로 조화를 이뤄 움직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 사람이 이를 흉내 내면 문제가 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곤충이나 문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역량만큼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로옴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삼성의 사회공헌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박물관을 건립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 것을 보고 ‘이것이 바로 사회공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옴은 현재 음악과 스포츠에 지원한다. 젊은 음악가에게 학비와 콘서트 비용을 지원한다. 로옴의 기업활동이 대중에게 간접적인 감동을 준다면 음악활동 지원을 통해 직접적인 감동을 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 마라톤을 지원한다. 현재 마이니찌 마라톤과 히로시마 마라톤을 지원하고 있다. 마라톤은 혼자서 장거리를 달리는 운동이다. 몇 천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다. 마라톤이 그토록 사랑받는 것은 분명 그 안에 고객감동의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와 경영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라톤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곧 ‘교토식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로옴의 환경경영에 대한 노력은.

 △로옴은 환경에 앞장 선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세계의 탄산가스를 로옴이 모두 흡수하자’는 모토로 환경조성에 나서고 있다. 환경은 ‘어느 누구가’가 아닌 ‘우리모두가’가 지켜야 하는 규율과 같다. 이를 위해 로옴은 호주에 ‘숲 육성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이와같은 사업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로움은...]

로옴은 1954년 저항기 실용신안 획득하고 교토에 동양전구제작소를 창업했다. 58년에 동양전구제작소 설립하고 65년에 반도체 개발과 저항기 생산 공정의 기계화를 완료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로옴’은 전자부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과 동아시아에만 총 23개의 제조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19개의 판매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사토 겐이치로 사장의 ‘한우물 파기’ 전략으로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기업으로 일본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이다.

 경영의 기본방침은 △사내(社內)가 하나되어 철저한 품질보증업무를 꾀하고 적절한 이윤을 확보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전 부문의 고유 기술발전을 통해 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 △건전하고 안전한 생활을 통해 풍요로운 인간성과 지성을 길러 사회에 공헌한다 △널리 유능한 인재를 발굴 육성허여 기업의 항구적인 번영의 초석으로 한다 등이다.

 특히 교육훈련에 중점을 두어 자기계발 지원은 물론 지속적인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365일 계속 가동되는 것이 이 회사의 특징이다.

 품질로 승부하는 기업의 모토는 재료와 반제품 구입시 납품자에게 계약에 의해 품질을 보증토록 하는 기본방침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재에서 부품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완전하지 않으면 절대로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사토 사장의 철학이자, 로옴 전 직원의 ‘금과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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