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을 PC방에서 밤새 게임하다 새벽 6시 쯤 학교에 갔죠. 그리고는 자다가 학교 마치면 다시 PC방으로 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자면서도 게임 속 장면이 아른거리는 거에요. 도저히 안되겠기에 학교를 그만 뒀죠.”
온라인게임 ‘뉴포트리스’ 화제의 게이머로 소개받은 노현정양(21)이 자신만의 게임 스토리를 이야기 보따리마냥 풀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일순 긴장됐다. 게임과 연관된 이색적인 활동이나 독특한 레벨업 스토리로 화제가 된 게이머라기보다는 게임에 빠져 거의 폐인생활을 해온 전형적인 게임 중독자를 만난듯 했기 때문이다.
사실 꺼내놓은 내용의 면면이 충격적이기는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비디오게임을 시작했고 6학년 때부터는 온라인 게임에 빠졌다. ‘바람의 나라’가 유행했던 시절, 일찌감치 게임을 독파하고, 막 등장한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등을 가리지 않고 접수했다.
# 자퇴 2번, 결석과 조퇴 밥 먹듯
중학교 때부터 결석과 조퇴를 밥 먹듯이 했다. 중 3 때는 ‘포트리스2’에 빠져 아예 기숙사 생활을 접고 수원 집과 서울에 있는 학교를 3시간씩이나 걸려 통학했다. 오로지 게임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 그녀의 담임은 “네가 무사히 졸업한 것이 선생님이나 너에게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고등학교 시절. 자퇴를 두번씩이나 했다. 당시 자퇴의 직접적인 이유가 게임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이 컸다. 이미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생활할 수 있는 그런 몸과 마음 상태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의사에게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게임 중독에 가까운 상태에서 ‘어디든 떠나고 싶은’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 겹쳐 학교 생활은 그녀에게 감옥과 다르지 않았다.
“게임은 나만의 아지트였죠. 학교에서나 집에서 쉽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어렵고 공통된 얘깃거리도 없던 상태에서 게임 속으로 들어가면 재미난 얘기와 뭐든지 쉽게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푹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한번은 집에 연락도 안하고 3일 밤낮을 길드원들과 어울려 놀다 부모님께 크게 혼나고 가출을 결심한 적도 있다. “3년 꿇었어요. 재입학할 수 있는 학교에 다시 들어갔을 땐 동급생은 물론 3학년 선배도 다 동생이었죠. 호호.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거나 막 생활하지는 않았어요. 다들 그냥 언니라고 불러주더라고요. 물론 사고도 치지 않았고요.”
# 특이한 경험 후회는 없어
그녀의 과거사를 들을 때 불행 중 다행이라 느낀 것은 가정환경이 꽤 좋았다는 점이다. ‘뭔 소리야, 부모가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돌보았으면 게임 폐인이 됐겠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고, 부모 또한 그녀에게 절대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들은 ‘언젠가 스스로 깨닿겠지’하며 더 크게 어긋나지 않게 만드는데 힘을 쏟았고, 이런 점들이 불행 중 다행스런 일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표정에 그늘진 면이나 소위 ‘싸가지 없다’는 N세대들의 불경스런 어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보이는 21살의 밝고 명랑한 그런 여인이었다. “후회요? 글쎄요. 그다지 없어요. 남들보다 늦었다지만 고등학교 과정도 마쳤고, 그때야 어쨌든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낼 수 있으니까요.”
처음 대면했을 때 혹시나 했던 비행청소년 같은 인상은 지워졌다. “특이한 길을 갔지만 제 나름대로는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많이 해봤다고 생각해요. 정말 좋아하는 것에 미쳐도 봤고, 그것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려고도 했으니까요. 참! 그러고보니 게임이라는 것을 통해서 각종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면 경험일 수 있겠네요.”
# 침술 배우며 마음 정리
‘뉴포트리스’가 서비스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한 달 만에 만렙을 찍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게임에 미쳐 모든 것을 접어버리는 생활은 더이상 없다. 과거에 쌓은 게임 노하우가 있기에 레벨업이 남보다 빠를 뿐이고, 금방 고렙에 다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게임에 빼앗기는 시간도 적어졌다고나 할까. 이제 게임은 그녀에게 있어 오락일 뿐이다.
얼마 전부터 침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게임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자주 놀러다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찾아온 근육통을 침으로 깨끗히 치유하고 나서 침술에 남다른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올해 말 쯤에는 어학연수 겸 체계적인 침술 과정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갈 계획이다.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미래와 직업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새로운 길을 침술로 채워가려 하고 있다.
“게임 말고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니 ‘포트리스’ 게임에서 보여준 정확한 포사격 만큼 침 놓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마지막 말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해보고 싶은 새로운 게임도 많이 나오고 좀더 놀고 싶은 생각도 많은데 좀 아쉽기는 해요. 사실 일본은 한국처럼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거든요. 마음 한구석에는 ‘좀더 게임하고 놀다가 공부하러 가라’는 욕구가 꿈틀대요. 유학 좀 미루면 안될까요. 히히.”
<임동식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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