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플레이어 전장의 이슬로…

어떤 종족이 나올 지 알 수 없어 경기에 대한 호기심을 높여주면서 리그에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랜덤 플레이어가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올초까지 랜덤 유저로 불리는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이 선수들마저 하나둘 게임판을 떠나거나 주종족을 선택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5년 전 스타크래프트 리그 초창기부터 당당히 ‘제 4 종족’으로 분류돼 게임판을 휘젓던 랜덤은 이제 보기 어려운 희귀 천연기념물처럼 돼 버렸다.



지난 ‘스카이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e스포츠 협회에 공식 랜덤 유저로 등록된 프로게이머는 삼성전자칸의 이현승과 이고시스POS 도진광, 한빛스타즈의 신연호 등 단 3명. 숫자도 적을 뿐더러 프로리그 등 팀리그는 물론 개인리그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확인된 바로는 도진광은 군복무 때문에, 신연호 선수는 일신상의 이유로 하반기 대회 출전이 어려운 상태다. 이제 공식적인 랜덤 플레이어는 이현승 하나만 남았다.

# 저조한 성적 ‘관심밖’

스타크래프트 리그 초창기만해도 꽤 많았던 선수가 활동했고, 주목할 만한 성적도 냈던 랜덤 유저가 이처럼 설자리를 잃고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게임팀 감독과 해설가 등 e스포츠 전문가들은 테란 등 하나를 주 종족으로 택해 플레이하는 프로게이머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고 나아가 프로게이머의 생명인 팬들의 관심 밖으로 밀린 것. 당연히 스폰서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주 종족 선택으로 선회하거나 급기야 무관심 속에 프로게임판을 떠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그나마 활약상이 돋보였던 팀리그인 프로리그에서 올들어 랜덤의 활용도는 거의 사라졌다. 지난해까지만해도 프로리그에서 랜덤 유저 또는 랜덤을 활용한 팀플레이는 프로리그의 또 다른 재미였다. 한팀에 속한 두명의 선수가 같은 종족을 선택할 수 없기에 어느 한 선수는 랜덤을 택해야 했고, 주로 저그였지만 랜텀을 통해 같은 종족이 나올 경우 투저그가 뭉친 이색적인 팀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 팀리그에서 랜덤의 활약은 최소한 지난해까지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번쯤 운에 맡긴다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팀플전에서 꼭 필요한 승수를 챙겨야 할 때 랜덤은 곧잘 활용됐다.

하지만 올들어 이 같은 재미가 거의 사라졌다. 랜덤을 활용하고자 같은 종족의 선수를 한팀으로 내보내는 경우 팀내부에서부터 배제됐고, 이는 선수층이 두터운 유명 게임단 입장에서 굳이 랜덤유저를 선택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 랜덤 전성기 ‘전설 속으로’

한 때는 랜덤이 크게 위세를 떨치던 시기도 있었다. 현재 삼성전자 칸에 남아있는 최인규 선수와 MBC게임 해설로 활동 중인 김동준 선수, 그리고 곱상한 외모로 여성팬에게 인기가 높았던 기욤 패트리 선수도 랜덤 유저 출신이다.

여전히 현역 선수로 남아있는 최인규의 경우 상대 선수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길 정도로 빼어난 랜덤 실력을 보인 대표적인 랜덤 플레이어로 꼽힌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됐지만 상대 선수는 어떤 종족이 나올지 몰라 초반 정찰 전까지 혼란을 피할 수 없었던 반면 최인규는 이미 알고 있는 상대의 종족과 자신에게 부여된 종족을 바탕으로 곧바로 필승 전략을 수립해 게임을 운영해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랜덤이 가진 장점은 약해졌고, 반면 단일 종족 플레이어의 기량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1대1 개인리그에서부터 랜덤 플레이어는 저그나 테란, 프로토스를 전문 선수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3가지 종족을 고루 연습하는 선수와 1가지 종족만 전문으로 연습하는 선수간의 기량 차이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초반까지만해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 칸의 이현승 선수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랜덤플레이어로 남아있는 이유는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 스타일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한가지 종족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 즉 한가지 종족만 국한돼 빌드오더를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테란이 나오면 저그를 선택하고, 저그가 나오면 프로토스를, 또 프로토스가 나오면 테란을 선택해 전략적으로 대응했던 그는 비록 성적이 잘 나오지 못한다해도 상황에 따라 자신이 콘트롤하고 싶은 종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스러워했다.

이현승은 “처음부터 랜덤이 좋았고 지금도 랜덤이 재미있다. 가끔씩 주종족을 선택하는 것이 실력 향상이나 성적에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듣지만 성적에 상관없이 랜덤 유저로 남고 싶다. 내가 원하고 재미있어야 프로게이머 생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3가지 종족을 고루 잘하는 선수?

랜덤의 몰락은 스타크래프트 게임리그의 변화의 한 단면이면서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현상이다. 프로게이머는 물론 게임팬 역시 서서히 사라져가는 랜덤과 랜덤 유저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랜덤의 묘미가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온게임넷 김창선 해설위원은 “스타크래프트 게임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3종족간의 전쟁을 다룬 것이지만 실제 게임에서 종족을 선택할 때는 랜덤이라는 또 하나의 종족아닌 종족이 추가로 4 종족이 겨루게 되면서 승부에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랜덤 유저에 대해 한 종족이라도 잘해야지 하는 비난보다는 3가지 종족을 고루 잘하는 선수로 봐주는 아량이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좀더 재밌게 만드는 인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임동식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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