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연기자의 고수에게 배운다]스타크래프트 저그편(상)

또 다시 피할 수 없는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 임무는 투신, 즉 싸움의 신 박성준 선수로부터 ‘스타크래프트’ 저그 플레이를 배우는 것. 평소 나름대로 미학을 추구해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흉측한(?) 저그를 배우라니…, 하지만 어쩌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2005 에버 스타리그’를 제패하고 ‘쏘원 스타리그’가 시작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박성준 선수와 어렵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스승(?)을 찾아 오후 2시 께 서울 이수역 근처 극동아파트에 자리잡은 이고시스 POS 선수단의 숙소를 방문했다.

선수들은 대부분 편한 옷차림으로, 일부는 팬티만 걸친채 거실에 놓인 교자상에 둘러앉아 점심, 아니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당시 선수들은 밤새 연습을 하고 얼마 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역시 프로의 길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박 선수와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고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배우기 시작했다. 박선수는 일단 제자의 수준부터 파악할 요량으로 인공지능(AI)을 상대로 한판 해볼 것을 주문했다.어떤 시험이든 시험은 사람을 긴장시키기 마련. 유명한 맵중 하나인 ‘로스트템플’에서 AI가 조정하는 프로토스를 상대로 대전에 들어갔다. 긴장된 상태라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빠져있었고 평소 프로토스만을 플레이해왔기 때문에 단축키를 몰라 마우스로 이리저리 찍어대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가관이었다.

 왜 이렇게 유닛들은 찍기가 힘든지…, 결국 AI 하나조차 이길 수가 없었다. 프로토스 유저로 평소 동내 스타크 대전에서는 나름대로 좀 한다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단축키만 잘 써도 웬만해서는 질 일이 없습니다. 단축키부터 익숙해 지세요. 그리고 마우스가 떨려서는 안 됩니다. 마우스를 힘줘서 잡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박 선수는 기본적인 것부터 지적했다.

박선수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는 첫 해처리에 4키를 할당하고 이후 4, S(라바 선택), D(드론 선택)키를 차례로 반복해서 눌러 드론을 생산했다. 이후 멀티 기지를 건설한 후 각 해처리에도 차례로 5, 6키를 할당해 쉬지 않고 드론을 뽑아내는 과정까지 시연했다.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e스포츠를 맡고 있는 기자들로부터 평소 프로 선수들의 손놀림을 보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익히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였다.

다시 기자의 차례. 익숙하지 않은 단축키를 이용해 시키는 대로 했지만 머리가 손을 따라가지 못했다. 무슨 키를 눌러야할지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자원은 쌓여만 갔고 앞마당 멀티기지가 어느새 AI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박 선수는 보기 답답했는지 마우스를 빼앗아 잡고 직접 방어에 나섰다. 당시 기지에 박아두었던 육상방어용유닛 성큰 3개 중 2개는 이미 질럿의 공격에 녹아내려 하나만 남고 저글링 몇 마리가 고작인 반면 AI 프로토스는 질럿 한부대 가량이 남은 상황.

속으로 ‘아무리 프로라도 어쩌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박 선수는 이를 비웃기나 하는 듯 현란한 콘트롤과 본진과 멀티에서 생산된 추가 저글링을 동원해 쉽게 막아내는 것이었다.

“자원이 절대 남아 돌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축키 사용이 필수에요. 돈이 생기는 대로 멀티를 늘려가세요.”

박 선수는 기자의 단축키를 이용하는 왼손 자세도 뜯어 고쳐줬다. 그는 해처리에 할당된 4, 5, 6키가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왼손을 숫자키 위치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했다.

타이핑할 때는 왼손이 A, S, D, F 키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이 정석. 평소 직업특성상 타이핑을 많이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그 같은 자세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박 선수는 단축키만 연습하고 있던 모습이 보기에 딱했던지 기본적인 컨트롤 팁 두가지를 알려줬다. 하나는 적을 공격할 때 치고 빠지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 놓아두는 것보다 타깃을 찍었다가 후방을 찍었다가를 반복해 치고 빠지기를 하면 아군의 피해가 훨씬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교전이 벌어진 아군 유닛 중 체력이 다해가는 유닛은 뒤로 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 그 유닛은 보다 오래 생존할 수 있게 되는데 유닛의 체력이 바닥이라도 살아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선수는 이같은 콘트롤보다 단축키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단축키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하라고 강조했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일일이 본진으로 돌아가 생산을 하면 반드시 지게돼 있어요. 4, S, D, 5, S, D, 6, S, D키를 반복해서 누르면 본진을 안보고도 생산을 할 수 있지요.”

그는 시범중 공격부대와 해처리에 모두 단축키를 설정하고 전투 중 본진 화면을 보지 않고 유닛을 쉴새 없이 생산하는 모습을 직접 보였다.

박 선수가 해처리에 할당하는 단축키를 1이 아닌 4키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공격 유닛의 부대 지정에 1~3키를 사용하기 때문.박선수는 F2와 F3키를 이용해 본진과 멀티 간을 신속히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조차도 처음에 습관을 안붙여 F2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처음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선수가 가르쳐 준대로 단축키를 이용해 드론과 저글링, 뮤탈을 뽑는 연습만 계속 했다. 처음보다 유닛들이 모이는 속도가 빨라졌고 이번에는 AI 한테 허무하게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그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 테크트리도 잘 모르는 상황이어서 결정타를 매길 수 없어 AI를 앨리 시키지 못했고 더 이상 바쁜 박 선수의 시간을 뺏을 수 없어 중간에 게임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내심 프로와의 지도대전을 기대했던 기자는 박 선수의 주문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연습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록 일회성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원리원칙대로 기본부터 가르침을 줬다. 이같은 박 선수의 성실한 자세가 지금의 투신을 있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으리라.

<황도연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