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다시 냉기류가 흐른다. 일각에서는 다시 ‘극일(克日)’을 외치는 이들도 있다. 반면 이제는 과거를 극복하고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동북아의 또 다른 주체인 중국과 함께 3국 간 동반자적인 협력 관계를 모색하자는 것. 거세게 다가오는 서구 패권주의에 맞서 ‘이이제이(以夷制夷)’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중·일 3국이 동북아 경제 주체로서 상호 인정하고 협력하는 첫 물꼬가 IT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현황과 과제를 점검해본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한·중·일 3국의 IT 장관회의를 마치고 나면 꼭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한·중·일이 미래 정보통신 주요 기술에 대해 7개의 의제를 선정하고 기술표준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임을 마치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미국에서 전화가 옵니다. 무슨 의제를 다뤘는지, 어떤 진전을 이뤘는지를 면밀히 묻죠.”
한·중·일을 주축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협력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거대 시장과 선도 기술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세계 ICT 시장에서 변방적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이 IT허브로 재탄생하기 위해 IT정책, 기술표준을 공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거대 시장과 제조기술을 갖춘 중국과 선도·원천기술을 갖춘 일본의 연계고리 역할을 해내면서 정치·외교 분야에서 구호에 그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조정자’ 내지 ‘동북아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중국과 일본은 직접 얘기를 진행시키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참여해야 얘기가 원활히 이뤄집니다.(진 장관)” 3국 간 IT협력에도 과거사 문제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동북아에서 우리나라는 종속변수가 아닌 주요 행위자로 나설 수 있고 동북아 협력의 주도자로서 균형자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기회가 부각된다.
한·중·일은 △3G 및 차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인터넷 △디지털TV·방송 △통신망 안전·정보보호 △공개소프트웨어 △통신서비스 정책 △2008 베이징올림픽 등 7개 분야의 이슈를 가지고 있다. 이들 분야의 ICT 표준을 주도하면서 동북아를 IT 중심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3국이 가진 비전이다.
일본은 표준전쟁의 패전국이었다. 유명한 VHS와 베타 방식 경쟁에서 참패했고 이동통신에서도 자국 특유의 표준인 PHS를 고집해 쓴맛을 봤다. NTT도코모가 두각을 나타내지만 실력(기술력)에 비해 정치력(표준주도)은 크게 부족했다는 반성이다.
중국은 표준전쟁의 신흥강국이다. 그러나 강력한 시장과 생산기술을 제외하고는 하이테크 위주의 표준화 리더십을 확보하기는 아직 부족하다.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의 격전장인 국제표준화 무대는 그야말로 힘이 지배한다.
“똑같은 주장이라도 미국 모토로라 대표가 하는 것과 아프리카 국가 대표가 하는 것은 무게가 다릅니다. 제조사 단독의 목소리보다는 제조사와 서비스사업자가 공조한 목소리가 힘이 세죠. 참가자들이 끄덕끄덕 하느냐, 갸우뚱 하느냐로 엄청난 이해관계가 달린 기술표준이 정해집니다.”
국제표준 전문가인 위규진 전파연구소 박사의 말이다. 이 같은 무대에서 한·중·일이 3국 간 협력체와 지역 표준화 공동체를 거쳐 가져온 기술표준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이 “내 꿈은 와이브로 시스템을 미국에 팔아먹는 것”이고 “미국 본토에 와이브로를 수출하면 참 통쾌할 것”이라는 말도 실상은 동북아 조정자를 거쳐 세계 표준 주도자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한·중·일 구도를 더욱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테스트베드화해 신규 비즈니스 모델의 시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4G 원천기술 공동연구와 시험주파수 대역 공유, 공개소프트웨어 시장 확대 등 한·중·일 협력의 성과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울러 인도와의 소프트웨어 협력, 남미 신규 시장 개척 등 다자 간 협력구도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위피, 와이브로 표준화 과정에서 통상마찰을 빚은 미국 등 선진국과의 관계 개선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한·중·일 IT표준화협력회의에 참석했던 저우바오신(周寶信) 중국통신표준협회(CCSA) 사무총장은 “한·중·일 간 IT표준 협력은 결국 초기 단계인 중국에서의 표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3국의 협력을 통해 중국 자체 기술력을 제고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 균형자·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기술의 블랙박스화 추세를 보이는 일본의 독자 행보와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중국의 행보에 대한 조정력을 키우기 위해 IT 테스트베드 허브로서의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한광수 인천대 동북아 국제통상대 학장은 “IT를 도구가 아닌 환경으로 인식하고 가장 IT에 잘 적응하는 국가를 하나의 성장기반으로 만드는 국가적 전략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연·김용석기자@전자신문, jyjung·yskim@
IT 많이 본 뉴스
-
1
쏠리드, 작년 세계 중계기 시장 점유율 15%…1위와 격차 좁혀
-
2
단통법, 10년만에 폐지…내년 6월부터 시행
-
3
“5G특화망 4.7GHz 단말 확대·이동성 제공 등 필요” 산업계 목소리
-
4
'서른살' 넥슨, 한국 대표 게임사 우뚝... 미래 30년 원동력 기른다
-
5
美 5G 가입건수 우상향…국내 장비사 수혜 기대
-
6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 ICT분야 첫 조직 신설…'디지털융합촉진과'
-
7
'오징어 게임2′,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1위
-
8
[이슈플러스]블랙아웃 급한 불 껐지만…방송규제 개혁 '발등에 불'
-
9
KAIT, 통신자료 조회 일괄통지 시스템 구축 완료…보안체계 강화
-
10
티빙-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새해 3월 종료…“50% 할인 굿바이 이벤트”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