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준
지난 2002년 당시 하이디스(현 비오이하이디스)는 국내 이름 있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수자를 찾는 데 온 발품을 팔았다. 삼성전자도 찾아가고 LG필립스LCD도 찾아갔다. 또 국내 대표적인 화학기업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대답은 ‘노’였다.
국내 LCD 업체들은 2002년 세계 최초로 이미 5세대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3.5세대 라인을 보유한 비오이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었다. 공급 과잉 조짐도 한몫 했다. 정부도 방관했다. 하이디스 채권단은 하이디스 회생을 위해 해외 매각을 적극 추진했다. 채권단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재정경제부도 이를 용인했다. 결국 2003년 초 중국의 이름없는 기업인 비오이에 3억3800만달러(4145억원)에 매각됐다. 실제 판매금액은 1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다.
2년 뒤 비오이는 중국에 5세대 LCD 라인인 비오이오티를 건설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4세대 기술도 보유하지 않은 중국 기업이 제대로 될까’라는 비아냥은 불과 6개월 만에 수율이 90%에 이른 다는 소문에 쏙 들어갔다.
그러자 국내 기업과 정부는 ‘기술 유출 주범’으로 비오이하이디스를 비난했다. 비오이오티의 성공에는 하이디스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비오이오티의 성공에는 비오이하이디스 직원의 ‘한 번 해보자’는 오기가 숨어 있다. 비오이하이디스 측은 “그렇게 애걸복걸할 때 국내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며 “그러더니 요즘은 기술 유출 주범으로 몰고 있다”고 볼멘소리다.
비오이오티의 성공은 중국 정부를 움직였다. 숙원 사업이었던 ‘디스플레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속속 중국 내 LCD 건설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있다. 5세대 LCD 라인 건설은 물론이고 6세대 투자 계획도 발표됐다.
PDP나 OLED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어려움을 겪는 일부 국내 업체가 해외 매각이나 투자 유치 대상으로 중국을 꼽고 있다. 국내 기업이나 정부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지만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다’ ‘기업 간의 일에 정부가 나설 수 없다’는 분위기다. 부메랑 효과가 두렵다. 책임을 나눠 지지 않을 경우 결과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산업부·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