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PC산업의 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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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폭의 마진을 확보하던 기술 집약형에서 가격이 싼 부품을 단순 조립하는 노동 집약형으로 국내 PC산업이 전락한 것은 결국 ‘기술’ 때문이다. 디지털 강국을 자랑하면서도 원천 기술격인 하드웨어 개발을 등한시했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발전과 궤를 같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 분야는 홀대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여전히 컴퓨터 기술은 후진국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라며 지나치게 중국과 대만을 얕잡아본 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와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았다.

 이미 국내 PC업체들은 좀 과장해 이야기하면 저가 부품의 단순 조립 판매상으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PC업체는 기술 개발과 명확한 마케팅 전략 없이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 결과 중국·대만 등 규모를 앞세운 외산 제품에 밀려 중견 PC업체의 연쇄 부도와 몰락이라는 극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도 날로 추락하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국제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품 주기 가설’과 정확히 부합한다. 제품 주기 가설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제품 주기가 이전할 때 선진국은 기술 개발과 고급 마케팅 전략에 투자해 더 나은 제품을 출시하고, 이 제품이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후진국으로 이전되면 선진국은 다시 기술과 마케팅 개발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주기적 순환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가설은 제품 선진국이 기술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무시하면 결국 PC업체의 연쇄 부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함을 시사한다. 직접 마케팅에서 승부를 걸고 시장을 지배하는 세계적 PC업체 델의 경우, 가격 면에서는 이제 어느 누구도 도전장을 내밀지 못한다. 서버를 비롯한 특화 시장의 꾸준한 도전과 기술 개발, 맞춤식 주문형 판매, 다단계 중간상을 거치지 않은 직접 판매 방식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단순히 가격이 세계적인 PC업체를 만든 게 아니다.

 제품 경쟁력은 가격·품질·서비스·제품 수급·배송 기간·판매 사원의 수준·신속한 의사 결정·대응 능력·판매 방식·마케팅 전략·인맥·우수한 디자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가격만 이해하고 가격만 강조하는 업체는 결코 시장에서 이길 수 없다.

 PC 발열을 해결하기 위해 쿨링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케이스 순환 구조를 연구하고, 반응 속도를 높여 메인 보드의 디자인을 재구성하며 각종 소프트웨어와 호환성 테스트를 강화하는 등 개발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팝콘 리포트’에서는 유행을 알면 성공이 보인다고 했다. 싸이월드 ‘홈피와 블로그’, 프리챌 ‘섬’, 야후 ‘피플링’, 네이트 ‘통’ 등 날로 변하는 디지털 세상의 흐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유효 수요를 이해하고 수요 흐름을 받아들일 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는 PC방과 메신저 부문에서 세계 1위다. 이는 델도 갖지 못한 것이다.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이 제휴하고 SK텔레콤이 합세해 세계 1위의 MSN을 최단 기간 내에 따돌렸고,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마케팅에 주력한 결과가 바로 ‘MP3 아이리버 신화’다.

 팝콘이 지적한 대로 IT추세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통합이다. 이는 하드웨어와 인터넷의 통합을 뜻한다. 애플 매킨토시와 쿼크 익스프레스, 리니지2 게임과 전용PC, 아이템 거래와 PC클럽, 사이버 머니 ‘도토리’와 하드웨어 할인 쿠폰 등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많다.

 이제 누구나 정보 네트워크에 접속해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 정보와 콘텐츠를 생산·소비하고 나아가 유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이 디지털 경향이고 이를 알아야만 PC산업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제품 주기 가설이 주는 교훈처럼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팝콘이 지적한 것처럼 유행을 파악해야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PC를 분해해 보고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블로그를 할 줄 알아야 더 많은 PC를 팔 수 있는 시대다.

◆허은만 이화테크 경영 총괄이사 kommang@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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