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기술로 인해 촉발된 컨버전스는 미디어와 정보통신 환경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존 서비스의 특징을 혼합한 전혀 다른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뿐 아니라 그 내용과 접속과정이 맞춤화될 것이다. 시장 및 산업 간 상호 진입이 가속되고, 기업 간 합병이나 제휴를 통해 유무선 통신 및 방송을 포괄하는 거대 사업자의 출현도 예상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를 수용할 규제체계의 혁신을 요구한다.
전송 플랫폼별로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했던 아날로그 환경에서는 플랫폼별로 네트워크, 서비스, 콘텐츠에 대해 일관된 규제체계를 적용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같은 전통적 규제체계로 서비스 및 시장구조 변화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미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융합에 대비하여 규제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2002년 4월 네트워크·콘텐츠 규제 프레임워크 지침을 결정하였고, 영국 등 20개 회원국이 이에 대한 법제화를 마쳤다. 네트워크와 서비스에 대한 단일 규제 프레임워크 적용,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네트워크 개방 등 공정경쟁 확보, 이용자 선택권 강화 등이 주 내용이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기술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수직 규제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전송과 콘텐츠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은 통신망을 통한 방송서비스 제공을 위해 전기통신역무이용방송법을 도입하는 등 융합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 추세와 최근 부각되고 있는 IPTV 등을 고려할 때 우리도 이제는 디지털 융합에 적극 대응하여 국제 수준에 부합하는 선진적 규제체계를 세워야 한다.
첫째, 기존의 수직적 형태가 아니라 수평적 규제체계로 바꿔야 한다. 수평적 규제체계는 전송 플랫폼별로 규제 논리가 다르던 것을 통합하여 비슷한 특성의 서비스에 대해서 동일한 규제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네트워크와 콘텐츠에 대해 다른 강도 또는 방식의 규제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서로 분리하여 수평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콘텐츠는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고 공공 성격이 강하므로 효율성이나 산업적 기능 위주의 네트워크 규제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셋째, 융합에 따른 집중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네트워크 개방과 콘텐츠 유통시장의 공정경쟁 확보가 필요하다. 융합 환경에서 이동통신망을 보유하지 않은 유선사업자나 신규로 방송을 제공하려는 사업자의 경우 이동통신망 이용과 콘텐츠 수급상 어려움이 따라 사실상 선발사업자와의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규제체계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가 가능하므로 IPTV 등 통신·방송 간 분쟁도 자연스럽게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무선재판매제도(MVNO) 도입 등을 통해 후발사업자의 경쟁력이 향상됨으로써 시장 전체의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다.
정보통신의 발전은 단순히 과학기술상의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그것은 개개의 기술적 총합이 아니라 법·제도에 의해 구조화되고 체계화된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고 정보통신 발전을 이끌 수 있는 규제체계 개혁만이 디지털 융합시대를 앞당길 것이다.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cbyoon@hanar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