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PC방 업주들의 단체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IPCA)와 ‘카트라이더’의 넥슨이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정량제를 둘러쌓고 줄다리기를 해온 이들은 2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끝내 서로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채 파국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IPCA는 전국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에 들어갔고 넥슨은 새 요금제를 원안대로 그대로 유지한 채 예약가입을 받고 있다.
양측의 극한 대결은 크든 작든 간에 게임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아예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IPCA는 지난 6월 28일 넥슨과의 2차 협상이 결렬된 이후 곧바로 넥슨 전 게임에 대한 불매를 선언하고 온라인을 통해 서명을 받는 등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또 마포구 대흥동, 종로구 숭인동과 논산, 부천시의 괴안동, 소사동과 서산시 등지의 일부 PC방은 넥슨게임 불매 포스터를 붙여놓고 실질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IPCA측은 7월 6일 현재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4500여명의 회원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4500명 불매서명
IPCA의 조영철 정책국장에 따르면 이같은 서명자 숫자는 서명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점을 감안해 서명자를 대상으로 일일이 일대일 통화를 하고 IP까지 확인해 허수를 제외한 수치다.
조 국장은 “초복인 7월 15일을 전후해 서명 5000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전국의 회원을 대상으로 단합대회를 가질 계획을 세웠다”며 “당초 예상보다 서명자 숫자가 빨리 늘어나 오히려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다”며 “행사는 1, 2차 집회에서 힘을 뺀 회원들이 서로를 독려하고 단합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IPCA는 행사 명칭을 ‘개잡는 날(가칭)’로 정했는데 행사날이 복날인데다 그동안 감정이 격해진 회원들이 집회과정에서 넥슨을 ‘X넥슨’이라고 지칭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는 이번 사태를 통해 PC방 업주들과 넥슨 사이에 감정의 골이 어느정도로 깊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느긋한 넥슨
IPCA의 강공에도 불구하고 넥슨은 기존 고객중 94%가 이미 예약 가입을 했다며 느긋한 분위기다.
넥슨의 PC방 영업을 총괄하는 남영욱 PC방영업본부장은 언급을 회피한 가운데 넥슨 홍보팀의 정효은씨는 “7월 둘째주 초까지 전국 2만2000여개 PC방중 무려 1만6500여개가 예약가입을 했다”며 “예약 가입률이 100%에 가까워 가입자 수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해지율이 2.5% 정도에 달하기는 하지만 이정도는 불매운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시해도 좋은 수치”라고 덧붙였다.
IPCA의 주장대로라면 불매운동에 서명한 4500명은 전체 PC방 업주의 5분의 1, 즉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슨의 예약 가입률이 94%에 이르렀다는 점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서명을 해놓고도 예약 가입을 한 업주, 반대로 예약 가입을 해놓고도 서명을 한 업주들이 많기 때문에 이같은 수치가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상당수의 업주들이 ‘카트라이더’를 불매할 경우, 당장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겠다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매운동이 어느정도 파괴력을 가져올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 서로 책임 전가에 급급
양측은 사태가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것에 대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IPCA측은 박광식 회장이 취임하면서 게임업계와의 상생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사태 초기에 원만한 해결을 원했고 중앙회에서 회원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그러나 넥슨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들끓는 회원들의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IPCA의 조국장은 “넥슨측은 협상테이블에 나왔던 책임자가 전권을 갖고 왔다고 다짐해놓고도 나중에 협상 결과를 뒤집기도 했다”며 넥슨측을 비난했다.
잇따른 표절 시비에 이어 이번 사태까지 겹쳐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넥슨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넥슨의 정씨는 “정량제는 PC방 업주들이 먼저 요구했었다”며 “다양한 안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IPCA는 이전 안만 계속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애꿎은 게이머만 골탕
IPCA와 넥슨은 현재 서로 완전히 등진 상황이다. 양측은 현재 대화채널이 일체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확인해주었다.
IPCA의 조 국장은 “지금까지 할만큼 했고 넥슨이 문닫는 날까지 불매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협회의 생각만으로 처리될 상황은 이미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일 협회가 넥슨측과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면 아마도 격앙돼 있는 회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넥슨측에서도 가입률이 90%를 넘는 상황에서 굳이 대화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다.
어쨋든 ‘카운터스트라이크’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이어 또다시 ‘카트라이더’ 불매운동이 벌어짐에 따라 애꿎은 일반 게이머들만 크던작던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됐다.
이에 대해 조 국장은 “게이머들이 업주들을 먹여살리는 고객인데 거듭 불매 운동이 벌어진데 대해서는 항상 죄송스런 마음을 갖고 있다”며 “PC방이 살지 않으면 게이머들도 즐길 공간이 없어진다는 점을 감안해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넥슨의 정씨는 “유저들이 넥슨의 게임을 찾으면 PC방 업주들이 가입하지 않겠느냐”며 “유저들이 불편을 느낄 만큼 게임을 찾아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넥슨사태는 갈수록 감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서명운동이 어깨를 동원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거나 ‘넥슨이 이용률을 올리기 위해 일부 지역은 IP를 개방했다’ 는 등 상대방을 비방하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득이될 수 있는 방향으로 풀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PC방 업주들과 넥슨이 감정부터 차분히 가라앉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도연기자 황도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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