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영화는 ‘월하의 공동묘지’로 대표되는, 이승의 한을 풀기 위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는 원혼들이 등장하는 귀신 영화가 주를 이룬다. 거기에는 가령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처럼 정신이상 살인마가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며 피가 흥건하게 고이는 슬래시 무비도 끼어들지 않고, 그렇다고 ‘엑소시스트’나 ‘오멘’처럼 초자연적 현상이나 종교적 현상과 연관시켜 공포를 극대화하지도 않는다. 오직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이다.
‘여고괴담’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한국 공포영화를 부활시켰다. 학교 선생님으로 이미연 같은 기성 배우들도 등장하지만 박진희, 김규리 등 당시 신인 여배우들을 동원해서 저예산으로 학교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1998년도 여름 시즌에서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며 이후부터 매년 여름 5편 내외의 한국 공포 영화가 쏟아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올 여름 시즌에도 한국 공포 영화 중에서는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이 가장 먼저 개봉 중이고 그 외에도 인터넷으로 먼저 개봉되어 화제를 몰고 온 ‘목두기 비디오’, 이우철 감독 성현아 주연의 ‘첼로’, 원신연 감독 채민서 주연의 ‘가발’ 등이 개봉 대기 중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여고괴담’ 시리즈이다.
최익현 감독의 ‘여고괴담4:목소리’는 풀어헤친 머리카락, 피 흘리는 입으로 상징화 되는 귀신의 시각적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듯이, 공포의 핵심은 소리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속편의 감독들은 시리즈의 기본 컨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공포를 창출해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최익현 감독은 억압적 교육(1편), 동성애(2편), 왕따(3편) 등의 핵심 주제와도 다르게, 질투라는 가장 보편적 주제를 끄집어내어 그것에 정체성 찾기라는 이질적 요소를 혼합시키고, 그것을 청각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여고괴담4:목소리’의 화자는 귀신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자신이 죽은 것을 모른다. 밤늦게 학교에 남아 성악 연습을 하고 있는 영언(김옥빈 분)은 무엇인가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지만 그 실체가 없는 것에 놀라 복도로 뛰쳐나오고, 칼날처럼 수평으로 날아오는 종이 악보가 목에 박히며 쓰러진다.
그러나 다음 날 영언은 여전히 교실에 있다. 하지만 친구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단짝 친구였던 선민(서지혜 분)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선민이 가장 영언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민이 영언에 대한 기억을 잃어간다면 영언의 목소리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선민은 갈등한다. 죽은 영언이 애처롭지만 동시에 무섭다. 그때 영언의 목소리를 듣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초아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최익현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섬세하게 내러티브를 풀어놓는다. 깜짝 놀라는 찰나적 공포가 아니라, 서서히 관객들의 정서를 사로잡으며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내면에 스며들 수 있도록 슬픈 공포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 영언이 스스로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하도록 구성한 연출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준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일관되게 여고를 무대로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등 아직은 낯선 이름의 신인들은 훌륭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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