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13)중국 무협의 `황금시대` 끝나

1972년 김용이 절필했다. 1983년에는 고룡이 죽었다. 사마령은 그 이전에 은퇴했다.

와룡생과 유잔양은 90년대까지 드문드문 작품을 발표했으나 실제로 그가 쓴 것인지도 모르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이로써 중국무협의 황금시대가 끝났다.

1980년 이후에 나온 대만과 홍콩의 소설 중에서 볼만한 것은 극히 드물게 되었다.

작품 이전에 작가가 거의 없었다. 그 드문 작가 중에 황역(黃易)과 온서안(溫瑞安)이 있다.온서안(溫瑞安)은 1954년 말레이시아에서 출생한 화교로 1971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시인으로 등단했고, 같은 해 홍콩의 무협잡지 ‘무협춘추(武俠春秋)’에 무협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무협소설가로도 등단했다.

그는 19살의 나이에 출판사를 세워 문학활동과 사회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80년 9월 25일 심야에 긴급체포되어 군사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국외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대만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었다.

1981년부터 그는 홍콩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신주기협(神州奇俠)’, ‘혈하차(血河車)’ 등 중요 작품을 ‘명보(明報)’에 연재했고, 1983년 대만으로 돌아와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무협소설 ‘사대명포회경사(四大名捕會京師)’와 ‘신상이포의(神相李布衣)’를 출간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온서안은 그 후 ‘사대명포진관동(四大名捕震關東)’, ‘사대명포투천왕(四大名捕鬪天王)’ 등 이른바 ‘사대명포’ 시리즈를 계속 써냈는데 ‘사대명포회경사’가 드라마로 만들어 졌으며, 작년에는 한국의 배우 차인표가 ‘사대명포’라는 제목의 새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사대명포’는 냉혈(冷血), 추명(追命), 철수(鐵手), 무정(無情)이라는 네명의 포쾌(捕快), 즉 오늘날의 형사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일종의 추리 무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인표는 그중 철수로 출연했다고 한다.

원작인 소설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다. 사실은 필자가 모 출판사에 추천해서 번역을 했는데 명성에 비해 구성에 허점이 많고 작품 수준에도 문제가 있어서 출간이 보류되었다.

온서안은 국내의 모 스포츠 신문에 ‘장군검(將軍劍)’이라는 작품을 연재했지만 몇 개월 못 가서 중단되었다. 이것도 위 번역본 문제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다. 중국 무협의 황금기 이후 최고의 작가라는 온서안의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다.

한편 황역은 홍콩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국내에는 ‘복우번운(覆雨飜雲)’, ‘심진기(尋秦記)’ 등이 번역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둘 다 완역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복우번운’은 명나라 개국 초를 배경으로 정통 무협의 법칙을 따라가는 작품이며, ‘심진기’는 진시황의 시대에 현대인,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의 특수 부대 요원이 시간 이동을 해서 활약하는 이야기다. 요즘 한국에도 유행하는 퓨전 무협인 셈이다.

황역은 그 외에도 ‘대당유협전’ 같은 초 장편 정통 무협소설을 쓰기도 했고 팬터지적 요소와 무협적 요소를 섞은 이환소설(異幻小說), SF적 요소와 무협적 요소를 섞은 과환소설(科幻小說) 등을 꾸준히 써오기도 했다.

전자의 대표작은 ‘파쇄허공(破碎虛空)’ 3부작이고, 후자의 대표작은 ‘능도우계열(凌渡宇系列)’ 27부작이다. 그의 작품은 상당수 드라마로 만들어져 있고, 만화로도 많이 그려졌다. ‘심진기’만 해도 국내에 만화로는 번역되어 들어왔다.

이 둘 외에는 거의 이렇다할 작가가 없는 것이 오늘날의 중국 무협계다. 오늘날의 홍콩과 대만 무협계는 한국 무협계의 현재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태릉 인근에서 치과를 개원하고 있는 최병곤이라는 치과의사가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국내에서 중국무협 원서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분이다.

중국 무협을 읽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고, 일년에 한두 번씩 중국과 대만, 홍콩 등지로 건너가서 서점을 뒤진다. 이 분에게 현대 중국의 무협소설 상황에 대해 질문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황금기에 비하면 거의 출간되는 소설도 없고 유명한 작가도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이 무협소설을 쓰고있긴 하지만 대부분 퓨전 무협이고 정통 무협은 찾아보기 어렵다. 2000년에 손효(孫曉)라는 작가가 ‘영웅지(英雄誌)’라는 작품으로 대만에서 반짝 인기를 얻긴 했지만 그 외엔 별로 언급할만한 작가가 없다.

적어도 홍콩과 대만에서는 무협 소설의 인기가 시들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중국에서는 대중소설의 사회적 위치가 재평가되면서 무협 소설의 의미에 대한 재조명도 이루어졌는데, 그 중심에는 중국으로 이주한 김용이 있었다.

그의 작품이 재발간되고, 그의 작품세계가 각 대학의 중문학과에서 연구, 분석되면서 오늘날 그는 ‘무협 문학의 대가’로서 대우받게 되었다는 것은 11회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그와 함께 중국 전역에서 새로운 무협 쓰기가 시작되었다. 그 경향은 대개 실제의 역사적 배경에 협객이 등장하는, 김용의 초기작에 가까운 경향이라고 한다. 아직은 김용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새로운 새싹이라고 할 것이지만 대만의 무협과도, 홍콩의 무협과도 다른 새로운 무협 소설이 나타날 가능성은 언제든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중국에서도, 대만에서도, 홍콩에서도 서점의 무협코너에는 김용과 양우생, 어쩌다가 고룡과 황역의 작품이 꽂혀있는 게 다다. 중국무협은, 적어도 소설 분야에 있어서만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만과 홍콩의 무협독자들도 황금기에 나왔던 책만을 즐겨 읽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되새김질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3월 8일, 모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기사는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중국 충칭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매일 싸우는 두 아이에게 ‘싸움 후 남는 것은 상처와 아픔 뿐’이라는 주제로 작문 숙제를 내줬다고 한다.

두 아이는 그 과제에 대해 무협 소설을 써왔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상대방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반 아이들이 그에 이어서 무협 소설을 썼다. 결국 이렇게 한 반 아이들이 모두 쓴 소설이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장송연의(張宋演義)’라는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대단한 인기를 끌며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무협 소설의 황금기는 확실히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무협은 소설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나 게임 등의 매체에 한정되는 것이 애초에 아니다. 무협은 하나의 문화다.

소설이나 영화 등의 특정 장르에서 생명력이 다했다 해도 그것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서 중국인들의 삶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있는 것이다. 저 기사가 바로 그걸 말해주고 있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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