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PC문화협회(IPCA)와 넥슨이 새 요금제를 두고 줄다리기에 들어간 직후 본지 사무실로 흥분한 어조의 한 PC방 업주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PC방 업주들이 대형 게임 업체를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니 제발 언론에서 나서 살 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IPCA와 넥슨의 2차 협상도 성과없이 끝났고 1000여명이 넘는 PC방 업주들은 강남에 위치한 넥슨의 사무실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갖고 IPCA의 박광식 회장은 삭발까지 단행하는 극한 상황이 연출됐다.
쓰는 만큼 요금을 낸다는 종량제.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새 요금제에 대해 PC방 업주들이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PC방을 찾아 업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마포에 위치한 50석 규모의 A PC방. 얼핏 봐도 3분의 1정도 되는 손님들이 넥슨의 ‘카트라이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 PC방이 지금까지 넥슨의 게임에 지출한 돈은 월 30만원선.
“요금을 한번에 4배나 올린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시간당 1000원도 못 받고 있는데 IP 하나에 시간당 220원 꼴 가져가겠다면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얘기입니까.” 업주인 최씨는 새 요금제라면 앞으로 넥슨 게임 이용료가 월 120~130만원선으로 크게 늘어날 것 같아 큰 걱정이다.
또 다른 인근의 B PC방. 이 PC방에서도 낯 시간대인데도 적지 않은 수의 손님들이 ‘카트라이더’를 즐기고 있다.
# 게임사 때 주고 나면 남는 것 없어
“시간당 기본 요금 1000원을 받고 있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500~800원짜리 대형 PC방들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에요. 많지 않은 수입중 대부분을 게임사 갖다주고 뭐가 남는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마포에 위치한 B PC방의 업주 김모씨는 PC방 간 치열한 가격경쟁 때문에 현재의 PC방 이용요금이 적정선을 밑돌아 남는 것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나마 음료나 간식거리 파는 걸로 좀 남기는데 다들 살기 어려워서 그런지 요즘은 음료도 잘 안나갑니다. 처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어디 쉽게 그럴 수 있나요.”
또 다른 마포의 PC방 업주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아 더욱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업주들이 한결같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PC방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될까.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현재 PC방 한시간 이용요금은 영등포 역 주변과 같이 유동인구가 많아 뜨내기 손님들이 많은 특정지역을 제외하면 1000원이 상한선. 심지어 서울의 신림동 고시촌이나 대구 달서구와 같은 몇몇 지역은 500원, 600원짜리 PC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유료게임 비용 빼면 시간당 500원꼴
A PC방의 손익계산서는 PC방 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시간당 1000원을 받는 이 PC방은 마일리지제도와 정액제를 운영하고 있어 시간당 1000원의 요금도 실제로는 고스란히 매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일리지제로 요금의 10%를 적립해주고 있고 7시간과 10시간에 각각 5000원과 7000원을 받는 24시간 정액제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할인율이 20%에 가깝게 되는 셈이다.
약 800원꼴인 시간당 이용요금에서 유료게임의 비용은 얼마나 할까. A PC방의 최씨에 따르면 ‘리니지’의 IP당(PC 1대당) 요금은 300원선, 넥슨의 새 요금제로 부담하게 될 비용은 220원 정도다.
남은 500~600원에 전용회선 임대료, 임차 비용, PC 등의 감가상각비, 인건비 등까지 제외해야 실제 업주의 몫이다.
대부분의 PC방이 마일리지, 야간정액제를 운영하고 있어 A PC방과 거의 비슷한 형편인데 좌석수가 30석 정도인 소규모 PC방은 절대적인 매출 규모가 적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용료 올리기도 쉽지 않아
유료게임 요금을 PC방 이용요금에 반영하면 업주들이 손해를 피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간당 1000원을 받아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지요. 하지만 50석 이상인 대형 PC방이 500원을 받는 상황에서 요금을 낮추지는 못할망정 올릴 수 있겠어요. 앞으로 먹고살일이 막막합니다.”
신림동 고시촌의 C PC방 업주인 신모씨는 PC방 이용요금이 몇 년전보다도 오히려 떨어진 상황에서 유료게임이 계속 등장하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대형 PC방들이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500원이라는 초저가 요금만 받을 수 있는 것은 24시간 전좌석이 풀가동돼 현상유지는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요금은 생존이 걸린 문제
넥슨 본사 앞에서 지난 6월 28일 벌어진 IPCA의 2차 항의 집회에는 무려 1000여명의 PC방 업주들이 참여했고 넥슨에 대한 온갖 감정을 쏟아내며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절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번 새 요금제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대로라면 방학성수기를 비롯해서 내년 2월까지는 기존 요금보다 4배는 더 지출을 해야됩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유분수지 해도 해도 너무했어요.”
넥슨의 부당한 가격조정에 항의하기 위해 전주에서 새벽에 올라왔다는 전모씨는 넥슨이 요금인상의 근거로 내놓은 자료가 게임업계의 최고 비수기때를 맞춰서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PC방 업주들을 물로 보아온 넥슨에게 진짜 물맛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PC방에서 그동안 빼먹은 돈으로도 성이 안찬다는 말인가요.”
파주에서 왔다는 이모씨, 서울 성북구에서 PC방을 하는 박모씨도 넥슨이 일방적이고도 교묘하게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고 성토했다.
# 나쁜 선례될까 두려워
사실 PC방 업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넥슨이 선례가 돼 제2, 제3의 넥슨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료게임 업체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요금까지 덩달아 올라간다면 앞으로 자신들이 더욱 곤경에 처하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PC방 업주들의 궁극적인 주장은 PC방이 PC를 손님들에게 대여해주는 곳이지 게임을 파는 곳이 아니며 이에 따라 유료게임은 요금을 PC방이 아니라 이용자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돈을 내고 무료게임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사 입장에서는 유료게임이라면 알레르기성 반응부터 보이는 일반 이용자들을 모른 채 하고 PC방 업주들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양측이 서로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백척간두의 입장에 있는 만큼 이번 사태가 쉽사리 일단락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어쩌면 PC방의 숫자가 자연감소되고 시장원리에 따라 이용요금이 올라가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황도연기자@전자신문, dyhwang@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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