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구파무협, 혹은 근대무협을 북파와 남파로 분류했는데, 그건 작가가 활동한 지역이 장강 북쪽이냐 아니면 남쪽이냐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작품 경향에 따라 다시 분류하면 근대무협은 검선(劍仙), 격기(擊技), 협정(俠情)과 방회(幇會)의 네 가지가 있다.
검선은 신마검협소설(神魔劍俠小說)의 약칭이다. 환주루주 이수민(李壽民)이 대표적인 작가고, 이 작가의 대표작인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이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기에는 신선과 요마가 등장하고 강시와 고루, 용들이 신선과 대적한다. 신선들은 신선답게 학이나 용을 타고 날아다니고, 법보라고 부르는 신검, 거울, 목탁 등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동양적 팬터지의 세계인 셈이다.
격기란 무림기격소설(武林技擊小說)을 말한다. 정증인이 대표적인 작가이며 대표작은 ‘응조왕(鷹爪王)’이다. 무림기격소설이란 무술을 익힌 무인들이 싸우는 것을 중심으로 서술된 이야기다.
협정은 언정무협소설(言情武俠小說)이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연애 이야기와 협객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소설이다. 중국에서는 달리 원앙호접파(鴛鴦蝴蝶派)로 부르기도 한다. 영화 ‘와호장룡’의 원작자로 유명한 왕도려가 대표적인 작가다.방회라는 것은 이익을 위해 결성된 조직을 말하며, 그 상당수는 암흑가, 혹은 비밀결사조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서술한 바 있다. 이런 방회들이 세력 다툼을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을 사회무협소설(社會武俠小說)이라고 한다. 백우가 대표적인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은 ‘십이금전표(十二金錢標)’다.
이렇게 분류하고 보면 현대 무협소설의 내용 구성요소는 근대무협에서 이미 다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사들의 싸움, 연애, 협객, 방회조직 등이 나오지 않는 현대무협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딱 하나 현대무협소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신마검협소설이다. 그리고 이번 회에서 주로 논할 것이 신마검협소설의 가치다.
게임의 배경으로서 무협, 그리고 무림이란 사실 팬터지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약점이 많은 배경이다. 무협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NPC도 인간이고, 원래는 몹도 인간인 것이 옳다. 게다가 무협에는 직업 개념도 없고 종족 개념도 없다.
이건 첫째, 캐릭터의 단순화를 가져온다. 팬터지 게임의 수많은 선택사양에 비하면 무협은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다. 몹도 단순하다. 기껏해야 늑대니 호랑이, 강시니 고루 정도가 몬스터형 몹으로 등장할 뿐이다. 나머지는 다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어야 한다. 자연히 몹의 다양성이 적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만들어진 무협게임은 팬터지와의 퓨전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검객, 권법자, 주술사 등으로 직업개념을 도입했다. 덕분에 무협이라는 이름만 걸려있을 뿐 알고 보면 팬터지 게임과 하등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무협은 어느 정도는 팬터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창작되는 것은 그렇다. 그러나 무협이 팬터지라고 해도 그건 동양 팬터지지 서양 팬터지는 아닌 것이다.
기사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것이 서양 팬터지라면 동양에선 무엇이 나와야 할까? 무사와 신선, 요마가 그 대답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촉산검협전’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촉산검협전’은 총 52권이나 되는 초장편 소설이다. 그런 길이 때문에, 그리고 내용 전개가 현대소설과는 달리 느슨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잘 먹혀들지 않았는지, 두 번에 걸친 시도가 있었지만 10권 정도밖에 번역되지 않았다.
‘수호전’에서 보듯이 표자두 임충의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임충이 노지심을 만나자 이야기가 노지심을 따라가고, 노지심이 송강을 만나자 다시 이야기가 송강을 따라가는 식으로 느슨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요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서극은 이 ‘촉산검협전’을 두 번에 걸쳐 영화화 했는데, 두 영화의 스토리가 다르다. 원작의 방대한 내용 중에서 일부를 잘라서 영화화했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이 소설은 스토리보다도 그 세계관이 중요하다. 이 소설에는 곤륜파, 아미파, 공동파 등의 문파가 등장하는데, 이 세 문파는 다른 무협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이 문파들은 신선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문파다. 이 문파의 고수들은 실제로 신선의 경지에 올라가 있다.
서극은 2000년대에 만든 ‘촉산’에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촉산, 즉 아미산이 구름 속에 떠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등장인물들은 슈퍼맨처럼 팔을 뻗고 날아다닌다. ‘촉산검협전’을 모르는 관객들은 웃었을지 몰라도 책속에 묘사된 세계가 바로 그렇다.
이 ‘촉산검협전’의 세계는 ‘서유기’에서 묘사된, 그리고 ‘봉신연의’에서 묘사된 동양적 팬터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다.그런 면에서 ‘봉신연의’의 세계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동양적 팬터지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봉신연의’는 달리 ‘봉신방’이라고도 불리는데, 제목 그대로 신선을 봉하는, 즉 잡아 가두는 내용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우리에게 강태공으로 잘 알려진 태공망 강자아다. 이 강자아가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는 신선들을 잡아 가두는 이야기라고 간략하게 스토리를 정리할 수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신선들은 좋은 신선 뿐 아니라 나쁜 신선들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신선들이 서로 갈라져서 패싸움을 벌인다. 그러니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약한 신선들이 갇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천교, 절교, 불교라는 세 개의 종교, 혹은 문파가 나온다. 천교는 사람이 수행으로 신선이 되어 모인 문파다. 절교는 여우나 호랑이, 거미나 뱀, 심지어 나무나 바위 등등 자연의 정이 신선이 되어 만든 문파다. 즉, 요마들이다.
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나한 등이 속해있다. 이 세 종교, 혹은 문파가 갈등을 벌이고 싸우는 이야기가 바로 ‘봉신연의’인데, 이런 세계관이라면 아무런 무리 없이 게임화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드래곤이 아닌 용이, 그리폰이 아닌 백학이 등장한다. 법보라 불리는 날아다니는 검, 용이 숨어있는 검, 요마를 가두는 그물, 요괴를 비추는 거울, 부르는데 대답하면 빨려 들어가 버리는 호리병, 그리고 무사와 장군, 신선과 보살, 요마와 요괴들이 동양적 색채의 산과 강, 구름 속 무릉도원과 땅속 깊은 곳의 선계를 배경으로 활약한다.
그건 무협이 아니라고? ‘촉산검협전’이 있잖은가.
사실 ‘봉신연의’는 게임기용 게임으로 이미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온라인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그 세계관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래서 기존의 게임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봉신연의’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만들었다는 ‘천도온라인’
◇ 서극의 ‘촉산’ 80년대에 제작한 것이다.
◇ 2천년대에 다시 만든 ‘촉산’
◇ 완역본으로 출간된 ‘서유기’
◇ 책으로 출간된 ‘봉신연의’
◇ 만화로 제작된 ‘봉신연의’
◇ PS2용 게임 ‘봉신연의 2’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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