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카엘-100% 청정지역, 클린룸을 만들다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정보가전 산업 강국이다. 이들 산업은 우리나라를 먹여살리는 캐시카우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꿈나무다.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 정보가전 산업을 이끌어가는 숨어 있는 핵심 기술이 있다. 바로 클린룸 오염제거 기술이다. 생산 과정에서 완벽한 청정지역을 유지해야만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카엘(대표 이후근 www.kael.co.kr)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클린룸에 활용되는 오염제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오염제거 기술은 반도체와 LCD, PDP 모듈 공정은 물론 국내 대다수 산업체 생산라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먼지 및 공기 중에 들어간 금속성 불순물을 원천적으로 제거, 제품 품질을 향상시키는 첨단 기술이다.

 이 회사는 환경 유해 물질인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휘발성 유기물질 등을 오염제거 필터에 흡착시켜, 반도체·디스플레이처럼 완전한 클린룸을 유지하게 하는 기술이 있다. 오염원이 제거된 생산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 수율은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카엘의 클린룸 오염제거 필터는 외국산에 비해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제품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도 카엘의 기술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카엘은 98년 3월 설립된 연구원 창업 기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다니던 이후근 사장이 배포가 맞는 연구원과 함께 창업한 7년차 기업이다. 이후근 사장은 원자력연구소에서 핵 발전소의 오염제거 기술을 연구하다가 창업을 결행했다. IMF를 맞은 정부가 연구원 창업을 독려하며, 창업지원제도를 내놓자 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창업 자금을 종자돈으로 과감하게 연구소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 마자 한 일은 연구소 설립. 정부의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 책임연구원 출신다운 발상이다. 연구실과 집을 오가는 쳇바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활성탄을 이용한 케미컬 필터, 반도체 유해가스 제거용 흡착제, 반도체 생산라인에 필수적이 오존제거 필터, 암모니아 필터 국산화에 성공했다.

 특허도 쏟아져 나왔다. 현재까지 등록된 특허만도 33건. 고성능 공기여과기 제조 방법, 첨착활성탄의 방사성 유기 요오드 제거 성능 검사장치, 복합흡착제를 사용한 반도체 제조공정 배기가스 처리방법, 망체에 활성탄 입자를 부착한 에어필터와 제작방법 등 정보통신 및 각종 산업체에서 활용될 수 있는 전문적인 특허가 쏟아져 나왔다. 출원중인 특허도 16건, 등록된 실용신안도 9건에 이르는 ‘특허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연구 성과는 매출로 이어졌다. 99년 8월 1차 증자를 받아 공장 설비투자를 마치고 나자 매출 실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카엘만이 보유한 고부가가치 특허 기술은 매출 대비 40%를 넘는 영업이익을 만들어냈다. 2002년 매출 28억에 4억5000만원, 2003년에 74억 매출에 29억, 2004년 109억 매출에 4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알짜배기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동부아남반도체, LG실트론, 삼성SDI 등 반도체 장비 업체는 물론 포스코, LG화학, SK, 호남석유, 한국수자원공사 등을 주요 고객사로 만들었다. 첨단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화학공정 등에 필수적인 오염원 제거 기술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식성 초미세 오염원 제거가 외국 제품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실험 결과가 알려지면서 외국계 업체로부터 속속 주문이 들어왔다. 현재 카엘은 납품한 TSMC사와 VIS사를 비롯한 대만 MXIC, UMC, PROMOS, INTERA 등과 협상을 진행중이다. 또 중국 SMIC, 하이닉스, 미국의 인텔과 마이크론, 인피니온, 일본의 DAN-TAKUMA 등과도 공급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중 상당수 메이저 업체에는 이미 지난 2004년부터 데모 실험에 들어가 성능 테스트가 완료된 상황이다.

 카엘은 케미컬 에어필터 특징상 성능을 검증하는데 보통 1∼2년가량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하반기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4일 오늘 카엘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지난 22일 코스닥시장 본부는 카엘의 코스닥시장 신규 상장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24일 카엘의 주식은 코스닥 시장에서 첫 일반 매매에 들어간다. ‘연구소에서 코스닥까지’ 7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다. 이후근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코스닥은 벤처기업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장된 만큼 책임도 느낍니다. 대한민국 첨단 산업에 꼭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알찬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올해 169억 매출에 61억원의 영업이익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겠지요”

◆인터뷰-이후근 사장

 7년전 이후근 사장의 직업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소 후행핵연료주기기술개발단 책임연구원이었다. 화학공학 박사 소지자에게는 최적의 직업이었다. 그는 연구소를 떠났다. 같은 원자력연구소 소속 창업 기업인 카이텍, 한빛레이저 등에 이어 3호 기업이 됐다.

 “20여년 가깝게 근무한 연구소를 떠나, 창업한다고 하니 집사람이 말리더군요. 미래가 불안했겠지요”

 그는 4년간 회사를 운영하다가 “정 어려우면 다시 연구소로 돌아가겠다”는 말로 아내를 달래, 겨우 창업을 했다. 아내에게는 ‘연구원으로의 복귀’가 유일한 기댈 언덕이었다.

 사실 그의 창업 꿈은 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리던 때 시작됐다. 당시 이곳에 나가 파견근무를 하던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했다. 행사장이 어수선한 틈을 타 늙은 부모님을 몰래 버리고 가는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을 보았던 것이었다.

 “충격이었습니다.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가 없어서 고민인 사람도 있는데. 그 때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돈을 벌면 한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노인 복지시설을 만들겠다고요”

 창업 3개월 후 그는 대덕밸리를 실리콘밸리로 키워보겠다는 야심에 차 있던 젊은 회계사 신해수를 만난다. 신 회계사는 초기부터 카엘의 자금과 경영에 관여, 연구원들의 쌈짓돈으로 만든 기업을 창업 7년만에 이 사장과 함께 코스닥 상장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99년은 그에게 결정적 순간이 된다. 카엘이 만든 반도체·디스플레이 클린룸 오염제거 장비가 모 반도체 업체에 납품되면서 매출과 투자가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구소 용역 일로 생존하던 기업에게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 때부터 카엘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외국계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클린룸 오염제거 기술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반란은 코스닥까지 이어졌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연구원 냄새 빼는데 7년이 걸렸으니까요. 연구원 냄새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아직 안그렇대요.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냄새를 뺄 수 있냐고…”

◆권혁원 경영기획실 과장이 본 카엘 연구소

 카엘이 높은 성장과 수익을 담당하는 전초기지는 다름 아닌 부설연구소. 전투병은 연구원들이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흔히 아는 일류대학 출신은 아니라는 점, 그러나 실험 능력에서는 최고라는 것이다. 둘째는 대표이사에서 영업과 생산까지 전직원이 연구원이라는 것, 셋째는 밤낮이 없이 연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카엘 연구원들은 화공학을 전공한 연구원 외에도 재료공학, 토목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이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이후근 사장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 직원들은 ‘악바리’로 소문이 높다. 이는 화공학 박사인 이후근 사장이 실험으로 검증된 자료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연구 스타일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연구소는 연구원과 비연구원의 구분이 없다. 연구원도 필요하면 현장에서 영업을 하고 영업과 생산직원도 신제품 개발에 필요하다면 연구소에서 일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와 결과물을 신속하게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연구과제 하나를 수행하더라도 개발 속도가 경쟁 업체에 비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다. 연구원이 현장을 알아야만 제대로 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연구소의 대장은 ‘스피드광’ 이후근 사장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스피드광이 아니라 제품 개발 기획 그날부터 밤을 새우는 스타일의 연구를 즐기기 때문이다. 창업 이후 휴일이 없는 일벌레이기도 하다. 원자력연구소 출신 서인석 박사와 더불어 연구의 이론적 배경과 실험적 경험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소는 소재부문, 케미컬필터부문, 스크러버레진부문, 환경부문으로 운영되며 각각 석사급의 팀장이 책임을 맡는다. 팀장 중 특히 장길남 팀장은 재료공학을 전공하여 핵심 소재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데 연구소 내에서는 지독한 ‘고집맨’으로 통한다. 실험 중에 연구원이 자리를 비우면 실험을 다시 하도록 만드는 독종이다. 자리를 비운 사이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검사하고 심지어는 소리의 파동까지도 신경을 쓴다. 실험실에서 졸면서 실험하다가는 장길남 팀장에게 당하기 일쑤다. 장길남 팀장의 잠자리는 늘상 야전침대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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