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소 걸음 `한국` 잰걸음 `외국`

최근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브루콘퍼런스 2005’ 현장. 세계 게임시장의 공룡 ‘EA’(일렉트로닉 아츠)는 깜짝 발표회를 가졌다. 골자는 퀄컴과 손잡고 모바일 플랫폼 ‘브루’(BREW)를 지원하는 게임을 적극 개발하겠다는 것.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PC·콘솔 게임 개발 및 유통사인 EA가 마이너 플랫폼에 해당하는 모바일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뻗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EA는 사실 오래전부터 모바일 시장으로 세력을 확산해왔다. EA 설립 맴버들을 주축으로 한 ‘디지털쵸콜릿’을 비롯해 EA는 직·간접적으로 모바일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배팅에 들어갔다. PC·콘솔·온라인 등 방대한 콘텐츠 라인업을 확보한 EA가 마지막남은 모바일까지 장악해 명실상부한 게임명가를 건설하겠다는 전략적인 포석이다.

EA를 필두로 세계적인 게임명가들은 이미 모바일 시장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THQ, UBI 등 PC·콘솔시장에 지명도가 높은 게임업체들이 모바일 게임 타이틀을 쏟아내고 있으며, 프랑스계 미국의 대형 게임유통사인 비벤디도 유럽의 모바일업체 인수, 방향키를 모바일쪽으로 돌린지 오래다. 일본 역시 굴직굴직한 콘솔업체들이 기존의 콘텐츠를 바탕으로한 모바일 게임을 론칭하고 있다. 바야흐로 모바일게임시장이 대형 게임업체간의 각축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유비쿼터스’와 ‘네트워크’란 두 화두로 플랫폼간 영역이 붕괴되고 있는 트렌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장의 시장 규모는 작지만, 머지않아 모바일이 게임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할 것이라 판단, 미래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세계 대형 게임업체들은 막강 자본력을 바탕으로 개발사와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 엠포마·잠닷·소렌토·게임로프트·아이플레이 등 이 시장을 주도해온 전문 모바일 퍼블리셔들도 초대형 펀딩과 성공적인 IPO를 통해 충분한 ‘총알’을 보유하며 세력 확산을 호시팀탐 노리고 있다.

업계 1위기업이래야 월 매출 10억원을 올리지 못하고, 중소·벤처기업이 대부분인 한국으로선 어찌보면 암담한 현실이다.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과 같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세계에서 모바일 비즈니스모델이 가장 발전한 나라로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았던 명성이 퇴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메이저 모바일게임사의 A사장은 “작년만해도 외국 큰손들이 한국모바일게임업체를 사겠다고 야단이었는데, 최근에 쏙 들어갔다. 어렵게 접촉된다해도 기업가치를 턱없이 낮게 잡아 실망만 커진다”고 푸념했다.

더욱 문제는 이런데도 모바일게임 시장의 ‘동맥경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 온라인 게임과 달리 모바일시장은 구조적인 한계로 대박을 친다해도 누적매출 10억원을 넘기 어렵다. 자연히 투자기관의 물길을 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벤처캐피털의 한 투자심사역은 “모바일게임 투자의 경우 프로젝트 투자는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기 어렵고, 지분투자는 IPO 자체가 봉쇄돼 창투사나 투자기관들이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것 같다”고 털어놨다.

컴투스 박지영사장은 “현재 상당수 외국 모바일게임업체들은 수 백에서 많게는 수 천억원의 현금을 보유, 공격적 배팅을 계속하고 있어 어떻게 이에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불과 몇년 사이에 모바일게임 강국이라던 한국이 게걸음하는 사이 외국 공룡기업들이 막강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황소걸음으로 우리를 밀어내고 헤게모니를 낚아채간 형국”이라고 강조했다.“지금같은 시장 구조 아래서 일본이나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무선 네트워크가 잘 발달된 나라입니다. 얼마든지 헤게모니를 되찾아올 잠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느냐, 아니면 다시 도약하느냐’의 기로에선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에 대한 업계의 전망은 이처럼 엇갈린다. 그러나, 역으로 얘기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브로드밴드 및 컬러폰 보급률,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모바일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한 우리의 강력한 인프라 위에서 다시 모바일 게임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짠다면, 얼마든지 일본과 함께 세계 시장을 양분해온 옛 명성을 유지·발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법으로 우선 떠오르는 것이 최근 수면위로 급부상한 온라인게임업체들의 모바일 시장 진입이다. 넥슨, 엔씨소프트, CJ인터넷, NHN 등 온라인게임 종주국의 대표기업들은 최근 모바일 시장에 대한 직·간접 투자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나섰다. SKT·KTF 등 이통사들의 3D 게임 프로모션을 겨냥해 본격화된 온라인게임업체들의 모바일 시장 진출은 수 많은 중소 전문업체들에겐 ‘위협요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 모바일게임 산업 전체로 보면 분명 ‘기회요인’이다.

자금력, 개발력, 서비스 운용력 등 모든 면에서 해외 게임명가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 온라인업체가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유선과 무선의 연동이 머지않아 일반화된다면, 세계 온라인 시장을 주도해온 국내업체들이 모바일 시장에서도 충분한 대외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모바일 게임 전문업체들 역시 ‘합종연횡’과 외부 자본조달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의력있는 콘텐츠로 승부한다면,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이 충분히 될 수 있다는게 중론이다.

게임빌 송병준 사장은 “게임이 자본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며 “창의력있는 기획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땀과 노력으로 불과 4∼5년만에 모바일 시장을 이만큼 일궈놓은 업계가 다시 강한 정신력으로 재무장한다면, 얼마든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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