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레노버와 벤큐

레노버(聯想)와 벤큐(明基電通)는 세계 무대를 향해 비상의 날개를 편 중화권 대표 IT기업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레노버는 글로벌 경제체제에 빠르게 편입되고 있는 중국의 간판급 PC업체고 벤큐는 IT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대만이 자랑하는 종합 IT업체다. 비록 두 회사가 같은 중화권이란 테두리 안에 속해 있지만 양안 관계가 여전히 긴장국면에 있다는 점에서 두 IT기업의 행보는 관심의 대상이다.

 레노버와 벤큐는 각각 IBM PC 사업부문과 지멘스 휴대폰 사업부문을 인수, 세계 무대를 향한 도약을 선언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지명도와 기술력을 활용해 무한경쟁의 장(場)인 국제 무대에 공세적으로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들 중화권 기업의 세계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기업의 브랜드와 기술력이 중국 기업에 고스란히 전이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TCL과 알카텔의 결별은 이를 잘 보여준다. TCL은 알카텔과 합작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합작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TCL은 또한 유럽 전자업체인 톰슨그룹과도 제휴하고 있지만 흑자 반전에 실패하면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알카텔과 톰슨그룹이라는 글로벌 브랜드에 의지해 국제 무대로 도약하기를 기대했던 TCL의 전략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입증된 셈이다.

 서구기업이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중국 기업의 세계 무대를 향한 집념이 화학적인 결합을 끌어내지 못한 채 물리적인 접합 수준에 그쳤던 게 실패 원인이다.

 이는 결코 TCL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레노버는 국제 무대에선 신출내기나 다름없다. 단순 유통에서 출발한 중국 내 PC업체로서의 한계가 분명하다. 기업문화나 기술력 등에서 글로벌 표준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레노버의 올 1∼3월 실적은 글로벌 전략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IBM PC부문 인수로 한창 들떠 있는 상황에서 전체 매출과 순익이 전년도에 비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휴대폰 사업의 부진이지만 PC부문도 외국 업체들의 거센 공세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레노버와 IBM의 상이한 기업문화와 경영전략을 어떻게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가 긴급한 문제다.

 벤큐는 레노버보다 (글로벌 감수성 측면에서) 한수 위라고 평가할 만하다. 지난 84년 세계적 컴퓨터 업체인 에이서의 자회사로 출발, 2001년 분리되기는 했지만 에이서의 우산 속에 있었다. 또 모토로라 등 휴대폰 업체들의 OEM 또는 ODM 공급 업체였다는 점도 레노버보다는 긍정적이다. 중국, 대만,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에 제조거점을 갖고 있으며 대만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업체인 AUO의 지배주주라는 것도 가점 요인이다.

 하지만 약점도 있다. 자사 브랜드 육성 전략에 힘입어 자사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39% 수준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OEM과 ODM 위주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GSM 분야에서 전문적인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지멘스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유럽시장에서도 다른 휴대폰 업체들에 덜미를 잡힐 가능성이 있다.

 중화권 대표주자로 부상한 두 업체가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관전자 입장에선 이제 막 세계화 전략에 시동을 건 레노버와 벤큐 가운데 누가 먼저 세계화의 고지에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중국 본토 기업과 대만 기업 간 자존심 대결이란 점도 흥미롭다. 기업문화, 경영전략 등에서 진정한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TCL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 기업의 글로벌 전략과 시장에서의 검증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길수 국제기획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