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경의 스타리그 엿보기](6)프로게이머들의 천적

지면을 통해 징크스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스타리그의 우승자들이 다음 번 시즌에 공통적으로 부진을 겪고, 슬럼프에 빠지는 이른바 ‘우승자 징크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또 다른 형태의 징크스가 있다. 오늘 이야기 할 ‘천적 징크스’다. 천적이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잡아먹는 관계에서 나타난다.

‘스타크래프트’에도 선수들 간에 이런 천척 관계가 성립된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매 번 명승부를 펼치는 관계는 라이벌이라고 한다. 그런데, 특정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연전연패를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천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왜 ‘징크스’인가? 천적 관계면 천적 관계지, ‘천적 징크스’는 또 무언가?

‘스타크’에서 천적을 논하자면 최소한 서로 다른 종족을 플레이하는 선수간의 천적관계를 이야기해야 옳을 것이다. 예를 들어, 테란 임요환은 저그 장진남의 천적이고 프로토스 강민은 테란 임요환의 천적이다라는 식이라면 단순히 ‘천적 관계’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같은 종족간에, 그것도 경기 스타일이 얼추 흡사한 선수들 간에 천적관계가 생긴다면 이건 ‘징크스’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바로 이윤열과 서지훈의 관계, 최연성과 이윤열의 관계, 그리고 서지훈과 최연성의 관계이다.

서지훈은 이윤열에게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번 이겼을 뿐 대부분의 경기를 다 졌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윤열을 최연성은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한다. 그런데, 그런 최연성에게 강한 테란이 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테란이 바로 서지훈인 것이다.

‘에버 2005 스타리그’ 8강전에서 최고의 우승 후보로 꼽히던 최연성이 서지훈에게 2 대 0으로 침몰했다. 두 경기 모두 감히 원사이드 경기라 할 만큼 서지훈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최연성 자신도 “최근 서지훈에게 5연패”라며 “서지훈과의 경기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고 실토한다.

지금 확장하면 들킬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확장을 하게 된단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들켜 낭패를 보고 만다.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궁구해 내는 수마다 악수가 된다.

이상하게 이 선수와 경기를 하면 그렇게 된다. 이건, 이윤열을 상대할 때의 서지훈도, 최연성을 상대할 때의 이윤열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누가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는가. 단지, 징크스일 뿐이다. ‘천적 징크스’.

<게임해설가 엄재경 next_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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