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업]뉴로맨서(사이버스페이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이버 펑크의 시초)

 ◆뉴로맨서·윌리엄 깁슨 지음·김창규 옮김·황금가지 펴냄

 마약과 폭력, 섹스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미래사회…. 사이버스페이스를 넘나들며 절체절명의 인류를 구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요즘도 할리우드가 SF영화에서 채택하는 단골 소재다. 론머맨(1992년)에서는 잔디깎이로 일하는 정신지체 청년 ‘조브’를 통해, 코드명J(1995년)와 매트릭스(1999년)에서는 조니와 네오를 내세워 미래 사이버스페이스의 모습을 현란한 그래픽으로 표현해냈다.

 하지만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스타의 기용과 엄청나게 진보한 시각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가상의 세계를 그린 할리우드 SF영화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책은 가상의 세계를 뜻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모습을 처음 소개한 사이버펑크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사이버펑크는 인공적인 신경조직을 뜻하는 사이버네틱스와 기존 사회에 반항하는 말썽꾸러기를 뜻하는 펑크가 합쳐진 말로 뉴로맨서 출간 이후 널리 확산됐다. 이전의 과학소설이 기계 문명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면 사이버펑크 소설부터는 컴퓨터와 기계 문명이 이미 일상화된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뉴로맨서는 사이버펑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문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첨단공학과 디자인, 문화인류학 등 수많은 영역에 파급 효과를 미쳤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 한 편으로 저자는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K상 등 SF계의 주요 상을 모두 석권했으며 과학소설 대가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이 소설은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해 기업 비밀을 훔치는 해커인 ‘케이스’라는 인물이 한 가문 내에서만 권력이 이양되는 초거대 다국적 족벌기업인 태시어 애시풀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저자인 윌리엄 깁슨은 가상공간을 처음으로 시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해냈다.

 좌표가 하나씩 배정돼 있는 끝없이 이어지는 격자와 표면이 매끈하게 구체로 형상화된 AI 이미지 등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가상공간이라는 아이디어는 사이버펑크 장르가 영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로 확대 파급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이보그와 인간의 정체성을 다룬 애니메이션 ‘공각 기동대’다. SF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 역시 어김없이 뉴로맨서를 모태로 제작됐다. 영화나 만화뿐만 아니라 1989년 제론 레이니어의 가상 현실 실험, 가상 현실 디자인 역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SF의 ‘고전’으로 조명받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저자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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