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45)은 외국계 컴퓨팅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달 대리로 입사한 지 만 10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꿰찼다. 입사 10년 만에 사장이 된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본사 CEO가 된 것도 아니고. 입사 1∼2년 만에 사장되는 사람도 숱에 많으니까.
그런데도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만 10년을 몸담았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다. 풍토상 특정 외국계 기업에 10년씩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국계 기업은 자주 옮겨야 몸 값이 올라간다. 이직을 능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태에 발빠르게 움직였던 이들은 그를 우매하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외국계 컴퓨팅업계에서는 그를 “유 대리”, “유 차장”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CEO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는 느렸지만 빨랐다.
더욱이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인적으로야 세계 최고 소프트웨어업체의 지사장이라는 영예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최소한 이직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외국계 중대형컴퓨팅업체 한 임원은 “유 사장의 취임은 외국계 기업들이 화려한 이력보다는 회사를 잘 아는 인물을 중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며 “외국계 지사장 선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일반 사원이 내부 승진을 통해 CEO가 된 것은 유 사장이 처음”이라며 “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의 CEO 상(像)을 바꿔 놓은 셈이다. 외국계 지사장 자리는 통상 능력있고 세태에 민감한 이들의 몫이었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도 CEO가 될 수 있음을, 앞으로 CEO는 한 우물을 판 사람이어야 함을 보여 준 것이다.
그는 대단한 ‘워크홀릭’이다. 사장 취임 이후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를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다.
유 사장은 국내 대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87년 LG전자에 입사해 7년간 해외사업본부에 몸담았다. 94년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긴다.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국내 기업과 달리 위 아래 눈치 안보고 일만 하면 됐다. 그래도 노동강도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0년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 연구개발(R&D) 분야를 제외하곤 안 해 본 역할이 없다”며 “사장 취임 전에는 마케팅총괄임원 등 3개 부서의 장을 겸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전직 사장들은 일의 강도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남들이 저만 보면 너무 일에 파묻혀 사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노동의 강도도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즐깁니다. 난제를 해결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릴 때 희열을 느낍니다.” 그래서 회사를 옮길 생각조차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 소홀하기 일쑤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가족과 보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됩니다. 집에서 많이 봐주는 편이죠.” 겸언쩍게 웃는다. 요즘 보기 드문 간 큰(?) 남자다. 그래도 그는 애국자라고 우긴다.
그는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회사내에 자칭 애국자들의 모임인 ‘스리키즈클럽(Three Kids Club)’을 만들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애는 무조건 많이 나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기회가 닿으면 하나 정도 더 낳고 싶은데. 아무튼 결혼하면 애는 무조건 많이 납시다.”
그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CEO의 조건을 제시했다. 지금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되고 싶다면 “일을 즐기라”는 그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조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의 앞에는 난제가 많다. 그를 주목하는 세번째 이유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의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 끼워팔기에 대한 심결이 예정돼 있다. 심결에 따라 향후 아시아 시장에서 무더기로 끼워팔기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 유 사장과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의 공개 소프트웨어 지원정책에 대한 대응도 쉽지는 않다. 게다가 지난 3월 터진 소프트웨어 가격차별 논쟁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독점 기업’ 꼬리표와 반(反) 마이크로소프트 정서를 가라앉혀야 한다.
그는 애국론으로 맞선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 모두 한국 사람입니다. 외국계 기업에 몸을 담고 있을 뿐이죠. 법적인 문제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정서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싶습니다. 애국하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는 국내 중소 IT업체들의 해외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본사와 협의중이라고 했다. 국내 투자를 최대한 이끌어 내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행보를 지켜보자.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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