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0.7나노미터짜리 속 빈 축구공 모양. 탄소원자 60개(C60)가 결합한 분자구조.’
과학자들을 나노(10억분의 1)미터 세계로 유인한 ‘풀러렌(Fullerene)’ 모습이다. 1985년 리처드 스몰리, 로버트 컬, 헤럴드 크로토 등이 함께 발견했다. 건축가 벅미니스터 풀러가 설계한 돔(dome)과 생김이 비슷해 ‘버키 볼(Bucky ball)’로도 부른다.
그동안 탄소 원자 배열이 조밀하면 다이아몬드, 덜 조밀하면 흑연이 되는 것으로 알았으나 풀러렌으로 인해 다른 세상이 열렸다. 탄소 원자 60개로 이루어진 게 처음 발견된 뒤 70, 82, 120개 등 다양한 풀러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풀러렌은 강하고 미끄러운 성질을 지녔다. 축구공이 이리저리 발길질을 당해도 끄떡없는 오각형 이음 구조를 가졌듯 높은 온도와 압력에 잘 견딘다. 과학자들은 무엇보다 풀러렌 안쪽 공간에 주목한다. 그 안에 탄소가 아닌 다른 물질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표적지향형 약물전달시스템’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현존 암 공략법의 하나인 약물치료가 암 세포 주변 정상세포까지 위협하는 경우가 많은데 풀러렌이 해결책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또 탄소원자 배열을 활용해 단단한 플라스틱을 만들거나 다이아몬드에 버금갈 정도로 날카로운 칼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지(樹脂·resin)에 풀러렌을 첨가해 내구·내열성을 높이거나 잡음 필터로 응용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특히 컴퓨터 칩 집적도를 높이는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00년 미 하버드대 화학·물리학과 박홍근 교수는 ‘C60’을 이용, 원·분자 단위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냈다. 이후 풀러렌은 정보통신 분야 연구의 궁극적 목표인 ‘1개 원·분자로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는 것’을 실현할 도구로 여겨진다.
정보기술, 바이오, 의약, 환경, 재료 등 폭넓은 분야에서 ‘풀러렌 혁신’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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