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6)무협 영향받은 `스타워즈`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가 개봉됐다. 개인적으로 에피소드 1, 2는 에피소드 4, 5, 6의 영광을 깎아먹은 졸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지 루카스가 청소년기부터 구상했다는 방대한 세계관과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스타워즈’의 세계를 한 마디로 말해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요즘 ‘스타워즈’ 관련 상품으로 다스 베이더의 마스크와 라이트 세이버, 즉 광선검이 팔리고 있다. 이 두 가지가 공통적으로 뜻하고 있는 것은 제다이 마스터다.

무림기행에서 웬 ‘스타워즈’냐고 의아해 할 독자가 있겠지만 무협과 ‘스타워즈’를 연결시켜 주는 키가 바로 제다이 마스터다. 그리고 SF 세계의 광선검이지만 칼 한 자루에 불과한 무기를 들고 나서는 제다이 마스터를 특별하게 대접받게 만들어주는 것은 ‘포스’다. 에피소드 4, 5, 6에서 ‘포스’는 초능력과 유사한 것으로 나온다.

다스 베이더가 손을 대지 않고도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마스터 요다가 정신력만으로 늪에 빠진 우주선을 들어 올리는 것 등 싸이코키네시스(염동력)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그러나 에피소드 1, 2가 나오면서 ‘포스’의 영역은 훨씬 다채롭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본 자질이 중요하지만 수련으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에서도 ‘포스’의 다크사이드와 라이트사이드라는 개념이 나타났다.TRPG라는 것이 있다. RPG의 기초가 바로 TRPG이다. 테이블 토크 RPG의 줄임말인데 유저들이 직접 만나 주사위를 굴리며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다듬어진 세계관이 설정집과 룰 북(rule book)으로 만들어지고, 컴퓨터로 자리를 옮겨 드디어 우리가 아는 RPG가 된 것이다. 최초의 RPG라 불리는 ‘던전 앤 드래곤’도 원래는 TRPG였다.

서양인의 설정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때가 많다. TRPG를 위한 설정집은 온갖 사소한 일에 대한 것까지 꼼꼼히 규정해 놓고 있다. 이런 설정 위에 서양의 팬터지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TRPG에는 팬터지만 있는 게 아니다.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가지고 만든 ‘D20 스타워즈’라는 TRPG도 있다. 던전과 용 대신 우주선과 외계인이 나오고 포스를 사용하는 제다이들에 대해 자세한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게임에서 유저는 자신의 포스를 다크사이드나 라이트사이드 어느 쪽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다크 사이드로 쓸 경우에는 훨씬 더 강한 효율을 보인다.

마치 무협에서 정파와 사파의 무공 비교와 같다. 당장 눈에 보이는 달콤한 효과가 없고 진전이 느리지만 궁극적으로 강하고 완전한 것을 지향하는 정파 무공이 라이트사이드라면, 강한 능력이 바로 보이지만 점점 어둠의 길로 빠져들게 되는 사파 무공이 다크사이드인 셈이다.

필자는 이 ‘스타워즈’의 포스를 기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스타워즈’ 마니아들의 말에 의하면 조지 루카스는 바로 일본의 아이키도에서 포스의 개념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合氣道라고 쓰고 아이키도라고 읽는 이 무술의 역사는 한국의 합기도와도 얽혀 있어서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고, 진위를 판단하기 힘드니 생략하자. 단지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원래는 신라 사람이 일본에 전했다는 설도 있다) 유술이 ‘대동류 합기유술’을 거쳐 아이키도와 한국의 합기도로 전해졌다고 해두면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아이키도는 조르고 꺾고 던지는 것을 주로 하는 무술이다. 그러나 명인의 경지에 이르러 기를 모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불가사의한 힘을 보이기도 한다. 앙상한 몰골의 노인이 장정 서너 명에게 잡혀있는데 한 순간에 모두 던져버린다거나 단지 자세를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잡고 있던 사람들이 날려지는 등의 동영상을 필자도 본 일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합기의 힘이라는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여기에서 동양의 신비한 기를 체험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포스로 반영이 된 게 아닐까?이쯤에서 무협과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자. 굳이 2회에 걸쳐 서양인이 기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 것은 ‘서양으로 무협게임을 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서양인에게 한자는 난해한 그림 정도로 보인다. 기의 개념은 기존의 서양 전통 사상과 전혀 달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무협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기 어려울 거라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저 넓은 시장을 두고 동양에서만 놀아야 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필자도 무협게임 제작에 관여하고 있지만 그 계기는 팬터지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울티마 온라인’이다. ‘무협의 세계를 이렇게 구현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무협게임에 관여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한 권의 TRPG 룰 북도 있었다. 바로 ‘GURPS Martial Arts’라는 책이다.

저자는 C. J 카렐라라는 사람으로 가라테를 배웠으며 무술, 특히 동양무술에 관심이 많아 동양무술을 사용하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기획한 것이다. 이 외에도 동양을 배경으로 한 TRPG는 여럿 있다. 동양은 단지 신비의 땅으로 뒷전에 미뤄두기만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도 무협 영화를 좋아한다. 그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게임으로 구현하기까지 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가능성을 봤다. 서양인이 납득할 수 있는 무협 TRPG 설정을 만들면 어떨까? 게임을 팔기 전에 먼저 세계관을 파는 것이다. 서양인이 납득할 수 있는 엄밀하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서양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 방식으로 TRPG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협은 팬터지의 세계 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소룡처럼 실전적인 싸움이 오가는 공간일 수 있고 황비홍처럼 과장된 무술의 세계일 수도 있다. ‘동방불패’처럼 바늘을 던지고 벽을 무너뜨리며 실력을 뽐낸다. 혹은 서극의 ‘촉산’에서 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런 다양한 틀 중 하나를 선택해 세계관을 구현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무협의 역사를 조망해 보겠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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