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 전체를 핀 머리에 기록할 수 없을까요?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봅시다.”
46년 전인 1959년 12월 29일 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이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던진 화두다. 파인만은 이 강연을 통해 ‘나노기술의 아버지’로 등장하게 된다.
파인만은 강연에서 “핀 머리 지름 약 1.6㎜를 2만5000배 확대하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모두 펼쳐놓은 넓이와 같다”며 “(반대로) 백과사전에 기록된 모든 것을 2만5000분의 1로 축소해 기록하면 된다”고 말했다.
언뜻 말장난 같은 얘기지만 46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파인만이 제시한 ‘핀 머리에 백과사전 새겨넣기’는 이렇다. 인간의 눈이 갖는 해상력은 0.2㎜ 정도인데, 이는 백과사전 망판(網版) 인쇄의 작은 점 하나의 지름과 같다. 이를 2만5000분의 1로 축소하면 지름이 약 80옹스트롬(1옹스트롬=100억분의 1미터)이다. 핀 머리에 쓰는 보통의 금속은 80옹스트롬 지름 안에 원자 32개를 품을 수 있다. 다시 0.2㎜짜리 점 하나로 눈길을 되돌리면 그 안에 약 1000개의 원자를 담을 수 있다는 얘기. 따라서 0.2㎜짜리 점들을 사진 조판에 필요한 크기로 맞추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체를 핀 머리에 새기고도 남을 ‘풍부한 바닥공간(분자세계)’이 있다는 게 파인만의 설명이다.
파인만의 이 같은 생각은 톱다운(top-down) 방식 나노기술 연구방법론의 초석이 됐다. 톱다운 방식은 기존 거시물질에서 출발해 점점 크기를 축소해가며 나노구조물을 만드는 것. 이 기법은 D램을 비롯한 반도체 소자 미세가공, 나노분말제조, 다결정재료 결정립의 미세화(100㎚ 이하) 등에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자들은 파인만의 풍부한 바닥공간 안에 작고 작은 나노 구조물들을 앞다퉈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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