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21의 윤선학(35) 사장은 사내에서 공장장이라 불린다.
이제 막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구룡쟁패’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며 회사에 상주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온라인 게임 유저들이 낮보다는 밤에 몰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새벽까지 모니터링하는 일은 일상사다. ‘구룡쟁패’가 길고 길었던 3년의 세월을 거쳐 드디어 빛을 본 날에도 윤 공장장은 집에 가지 못했다.
유저들의 반응이 좋고 전문가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협으로 세계를 재패하겠다는 윤 사장을 만나 ‘구룡쟁패’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제 시작입니다. 비행기가 겨우 이륙한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앞으로 고공 비행을 위해 치뤄야할 일이 더 많습니다.”
최근 오픈한 정통 무협 게임 ‘구룡쟁패’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인디21 윤 사장의 말이다. 그는 오픈 베타 테스트를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하겠다며 굳은 각오를 내비췄다.
그가 게임 바닥으로 들어온 계기는 매우 특이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에서 7년이나 근무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샐러리맨이었다. 그나마 일도 열심히 안 하고 빈둥빈둥 놀기 좋아하는 직원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삼성에서 정시에 퇴근한 사원이라면 윤선학’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온라인 게임 ‘뮤’를 통해 웹젠의 신화를 알게 됐고 뭔가 홀린 듯 무작정 인디21에 투자한 것이 시작이었다. 투자를 하고 당시 테크노마트에 위치했던 인디21을 방문했더니 직원 10명 중 프로그래머가 아예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2002년 5월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인디21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구조조정이었다. 딱 2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새로운 개발자로 팀을 짜면서 무협 작가 좌백과의 계약서도 다시 작성했다.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설립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좌백 작가와 계약서를 다시 쓴 것은 내용이 너무 두리뭉실해 후에 말썽의 소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매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해보기로 결정한 겁니다. 또 좌백 선생님은 가장 중요한 분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대우를 위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계약서는 정확하고 분명해야죠.”
홀로 이리저리 뛰다 힘에 부친 윤 사장은 삼성전자 입사 동기였던 친구를 영입했고 다시 모건 스탠리에서 잘 나가던 대학 후배를 CFO로 끌어 들였다.
# 운 좋은 남자
현재 인디21은 직원이 75명에 이르고 있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자리 이동이 많은 게임 바닥에서 이들 개발진들은 인디21에서 꾸준히 몸을 담고 있다. 윤 사장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제대로 된 무협 게임’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단결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좌백 작가를 만났기 때문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작품도 가능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 운이 굉장히 좋습니다. 좌백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렇고 훌륭한 임원들과 우수한 개발자들이 여기 모여 있거든요. 특별히 헤드헌팅을 통해 스카웃 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실력있는 친구들이 인디21에서 오래도록 근무하는 것을 보면 정말 고맙죠.”
그러나 힘든 시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장 자신의 게임에 대한 무지와 게임 마니아 개발자들과의 충돌이 컸다. 윤 사장은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초기에는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게임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개발자를 컨트롤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게임 개발자들은 일반 회사원처럼 근무하지 않는다. 또 게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이한 인물이 많다.
그래서 윤 사장이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부분이 ‘교감’이라고. 개성이 뚜렷한 개발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사장을 믿게 하기 위해 대화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운영자 등 맡은 분야에 따라 서로 이질감을 가지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놀기 좋아했던 삼성맨 윤 사장도 스스로 변했다며 지금의 자신을 모습을 보면 놀랄 사람 여럿있다고 웃었다.
“100%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조금씩 실수를 하죠. 하지만 누구보다도 제가 잘못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개발자들과 임원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네요.”
# 해외 진출은 차분히
윤 사장은 해외 진출에 대해 만만디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협 게임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으로 수출하기 쉽지만 그렇다고 국내 시장을 절대 소홀히 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팬터지로 점철된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정통 무협 게임으로 승부를 내 유저들에게 인정받으면 해외로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중국측과 엇박자를 낸 과거가 있어 더욱 천천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업체들은 중국 회사들과 계약을 쉽게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국 기업과 계약을 맺은 후 불미스러운 뉴스가 자주 터져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 사장은 확실한 회사와 좋은 조건으로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 시장만 바라보면 온라인 게임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세계를 재패할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무협은 매우 매력적인 아이템이죠. 또 그것을 게임으로 잘 만들 수 있는 곳이 우리 나라에요.”
무협도 팬터지처럼 체계만 제대로 갖추면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먹힌다는 것이 윤 사장의 설명이다. 거대한 시장인 중국을 먼저 장악하고 북미와 유럽으로 진출하면 승산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협 게임을 제작할 것이라는 윤 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게임성으로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작은 회사지만 결코 유저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으로 다가 서겠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켜봐 달라는 것입니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harang@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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