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약의 발판 마련할 것으로
삼보컴퓨터가 결국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법정 관리가 받아들여지면 삼보의 모든 금융 채무가 동결되고, 법원에서 지정한 법정 관리인에 의해 자금을 비롯한 기업 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 받게 된다. 삼보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법정 관리를 통한 채무 재조정으로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추가적인 구조 조정을 진행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매출 급감 ‘직격탄’ = ‘PC산업의 살아 있는 증인’이라 불릴 정도로 25년 역사의 삼보컴퓨터가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배경은 해외 사업 매출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까지 매출의 60∼70%을 ODM 사업에 의존하던 삼보는 수익성이 희박한 ODM 사업 구조를 개선하고 장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 브랜드 사업과 국내 영업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99만 만 원대의 저가 노트북 ‘에버라텍’이 성공하면서 국내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듯 했지만 급격한 사업 구조 전환은 ODM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대만 업체의 저가 공세로 HP· 게이트웨이 납품 물량이 축소되며 4개월 만에 ODM 수출 규모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삼보는 18일 법정 관리 신청과 함께 ‘HP와 ODM 거래 종료’를 공시했다. 삼보컴퓨터는 HP와의 ODM 비즈니스를 통해 지난 한 해에만 전체 매출의 40.5%에 해당하는 8822억9700만 원을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거래 중단으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PC시장 ‘조정기’ =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는 비단 삼보 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 원인은 전세계 PC산업의 성장성 둔화와 업체의 과당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PC산업은 2000년 정점을 찍고 2001년에는 사상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업체 간 인수·합병(M&A)과 저가 경쟁이 속출했다. 2002년 HP와 컴팩의 초대형 합병, PC의 원조인 IBM의 PC 사업 매각도 이런 추세에서 이뤄졌다. 점점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에서 PC업체는 결국 ‘가격’에 승부수를 던졌다. 델컴퓨터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의 저가 공세가 시작됐고 국내에서도 유수의 브랜드가 출혈 가격 경쟁에 동참했다. CPU와 운영체제(OS) 등 핵심 기술을 갖추거나 대량 생산· 대량 판매 위주의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PC사업의 전망은 불투명해 졌다. 지난 달 현주컴퓨터가 최종 부도 처리된 데 이어 삼보도 결국 법정 관리를 택한 것은 이 때문에 이미 예견된 사태다. 삼보가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나섰지만 이런 추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회생 가능성은= 수원지법에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삼보는 최종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였다. 법정 관리 유무에 대한 결정은 빠르면 2주, 길어지면 두 달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국내PC산업에서 삼보가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 볼 때 법정 관리는 무난히 받아 들여 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 경영진이 경영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삼보컴퓨터 측은 “수출 금융 등 해외 영업 부문에서 당분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나, 국내에서의 25년의 노하우를 통한 기술력과 전국 규모의 유통망이 건재해 재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수익성을 위주로 한 사업구조 개편, 에버라텍 노트북을 중심의 국내 영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가겠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법정 관리 기간에 추가 구조 조정과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국내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 법정 관리를 졸업할 시점에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