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환율전쟁의 파장

가끔 환율이 폭락할 때면 분주한 외환 딜러의 모습을 담은 보도 사진을 볼 수 있다. 전화기 두어 대를 한꺼번에 들고 열을 내는 표정으로 고함치는 모습에서 외환시장 객장의 숨막히는 전투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달러·엔·유로 등을 사고 파는 외환 시장 자체가 누군가 이익을 보면 반대로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 피 말리는 제로섬게임이 펼쳐지는 ‘통화의 전쟁터’다. 때문에 전사인 딜러로서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일 벌어지는 ‘통화 전투’의 배후엔 각국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있다. 사령관 격인 이들은 국익을 위해 때로는 ‘환율 전쟁’을 감행한다. 항상 초점은 달러 환율이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달러 가치가 최근 폭락하고 있다. 이유는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이 무역적자에다 재정적자까지 겹친 쌍둥이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고민만 할 뿐 무책임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약한 달러정책을 펴겠다고 광고까지 해댄다. 책임을 외국에 전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 달러를 갖고 있는 세계 각국은 달러 가치가 떨어질까 봐 책임이라도 있는 듯이 손해를 보면서 달러를 사 모으고 있다. 수출로 버텨나가고 있는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일수록 그 값을 유지하는 데 더 노력한다. 우습기도 한 이 현상은 전세계 경제가 미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이 달러환율 조절을 통해 경제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0년대 중반 이끌어낸 ‘플라자합의’다.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던 일본에 250엔대이던 환율을 100엔대로 낮추게 한 것이다. 말이 ‘합의’이지 사실상 미국의 힘에 눌려 일본은 억지로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환율 절상 분만큼 보유 자산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무기가 동원되지 않았지만 통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도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압박 강도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중국이 6개월 내에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보복관세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상전쟁을 예고한 셈이다. 여기에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틈만 나면 중국의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또다시 위안화 절상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세계 언론들은 위안화 절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국의 암달러시장에는 이미 위안화가 평가 절상돼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외환시장은 정부 정책시장이다. 때문에 위안화 절상 폭이나 시기는 공식적이든 암묵적이든 중국정부와 미국정부의 협상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미·중 환율전쟁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미·대중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미국이나 중국 경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근 움직임을 고려하면 미국과의 마찰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대비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에 통상압력을 가할 때에는 국제무역상의 상호주의 원칙을 들어 우리에게 먼저 통상압력을 높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또 중국도 어떤 형태로든 다른 국가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대외 변수를 정확히 짚고 정교하게 관리해야만 ‘나비효과’ 식의 후폭풍을 막을 수 있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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