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좋은 벤처는 망한다.”
위의 말은 어폐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이 좋은 데 비해서 회사의 다른 부문 능력, 특히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회사는 망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런 범주에 드는 벤처기업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일하다가 창업을 한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그 당시는 벤처 맹신의 시대였으므로 필자가 아는 여러 대학 교수님도 많이 창업을 했는데 대개 결과가 좋지 않아서 대학으로 복귀했다.
최근 기자들에게 “왜 대학 교수나 대기업, 혹은 국책연구소의 실력 있는 연구원이 세운 벤처기업이 잘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단골로 듣는다. 아울러 필자의 경우는 특별히 차이점이 있었는가 궁금해 한다. 사실 스스로도 잘 모르는 점인데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분석해 봤다.
해당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졌다고 하는 엔지니어가 세운 회사를 보면 지나치게 자신들의 기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면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름대로 실험실에서만 구상한 제품을 만들게 된다. 필요하면 사업 아이템을 바꿀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기술을 빌리기도 해야 하는데 좀처럼 이뤄지기 힘들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팔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케팅의 중요성을 간과하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마케팅이나 사업개발 능력은 종래의 중소기업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펄서스테크놀러지는 최근 많이 보급된 홈시어터, 혹은 휴대폰에 사용되는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필자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반도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굳이 필자의 전공분야 기술을 꼭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다.
사용자로서 오디오에 취미가 있다 보니 자연히 고객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됐고, 마케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어찌 보면 필자가 가진 기술 밑천이 별로 좋지 않아서 많은 기술 중심 벤처기업이 간과한 마케팅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팔리지 않는 기술은 어디엔가 문제가 있는 기술이다. 제품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팔릴 수 있는 기술이고 중요한 기술인지 마케팅 측면에서 판단해야 한다. 고객과 대화하고 고객의 필요를 날카롭게 파악하는 능력은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자주 접하는 외국 회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마케팅을 제품이 다 만들어진 다음에 어떻게 팔지 시장조사나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외국의 첨단 기술기업들은 마케팅 조직에 능력 있는 엔지니어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사업 전략 수립, 상품 기획, 기술적인 검토와 제품 사양을 마무리 한 뒤 전문엔지니어에게 넘겨 개발토록 한다. 이들은 엔지니어로 입사해 개발업무 경험을 맡은 뒤 마케팅으로 전환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해당 회사의 리더이자 부서장,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일부 엔지니어는 마케팅을 마치 물건 파는 심부름꾼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필자가 재능 있어 보이는 한 엔지니어에게 커리어 전환을 권유했더니 마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매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공계 출신들은 자신의 문제점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엔지니어들도 대기업, 혹은 벤처기업의 주역으로 제 몫을 하려면 마케팅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오종훈 펄서스테크놀러지 사장·포항공과대학교 교수 info@pulsus.co.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톡] 무엇을 위한 징벌적 과징금인가
-
2
[ET시선] 'AI 기반 의료체계 수출'로 패러다임 바꾸자
-
3
[정유신의 핀테크스토리]토큰 증권, 발행은 되는데 거래는 왜 활성화되지 않나
-
4
[ET단상] 무겁고 복잡한 보안, 이제는 바꿔야 한다
-
5
[부음] 정훈식(전 에너지경제신문 부사장)씨 장인상
-
6
[인사]한국건설기술연구원
-
7
[기고] 범용 모델 경쟁을 넘어, 엔터프라이즈 AI가 이끄는 '현장 구현형 AI'로 승부해야 한다
-
8
[부음] 김재욱(금융투자협회 전문인력관리부장)씨 부친상
-
9
[부음]김규성 전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회장 모친상
-
10
[부음] 김금희(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사무총장)씨 별세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