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마르코니의 매직박스

 ◆마르코니의 매직박스/개빈 웨이트먼 지음/강창헌 옮김/양문 펴냄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휴대폰.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안의 멀티미디어 기기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1896년 12월 런던 토인비홀에서 ‘무선전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마르코니가 무선통신 장치를 대중에 선보였을 때 그것은 단순한 ‘마술상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마술상자가 19세기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 될 것이며 무선통신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가치를 가져다 줄지, 더 나아가 인류 사회·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학과 주술의 경계가 모호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무선을 저급한 사기쯤으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저명한 과학자들조차 무덤 저편에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장치라고 믿었다.

‘마르코니의 매직박스’는 뛰어난 한 아마추어 발명가의 전기인 동시에 무선통신의 화려한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웨이트먼은 초기 무선 역사의 상황과 마르코니의 경쟁자 페선던과 디포리스트의 관계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과장없이 다뤘다. 인류사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이자 통신,방송,운송,전쟁 등 과학사에서 중대한 발전의 출발 선상에 있던 당시의 풍경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1909년 대서양에서 발생한 호화 여객선 리퍼블릭호와 플로리다호의 충돌 사고는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의 위력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된다. 무선전신은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수장될 운명에 놓여있던 4000여명의 인명을 구조하는 일등공신이 됐으며 대부분의 선박에 무선통신실을 설치하게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 사건은 마르코니에게 노벨상이라는 명예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가져다준다. 막대한 투자가 단행된 기존 유선통신업체들의 반발과 그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1912년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1913년 볼투르노호의 침몰은 마르코니의 무선을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켜준 또 하나의 사례다. 볼투르노호 재난구조 이후 해운 회사들과 각국 해군들은 무선의 잠재적 가능성을 파악하고 주력 통신수단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놀랄만한 발명을 이룬 발명가이자, 적절한 시기에 잇따라 발생한 해난사고로 사업에서도 성공한 기업가였지만 자신이 거둔 눈부신 성공의 희생자였다고 평가한다. 보이지 않는 전파 연구라는 목표에 몰두하면서 그는 항상 경쟁자가 자신을 추월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에 쫓겨야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대서양을 오가는 선박에서 유명가수나 배우들과 어울렸으며 이런 사생활은 그의 과학적 업적을 퇴색시켰다. 말년에 무솔리니의 절친한 친구로 파시즘을 선동해 명성에 오점을 남겼던 일화도 읽을만하다.

특히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무선전신을 이용한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의 최초 해상전투, 대서양을 오가는 정기선에서 무선전신으로 살인범을 체포하는 과정과 무선 도청이 난무했던 전쟁, 초창기 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역사적 기록들로 흥미를 돋구고 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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