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자통신기술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1895년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선전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발명품을 사준 곳은 조국 이탈리아가 아니라 영국해군이었다.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정부는 무선전신이 식민통치에 백만 군대 이상의 힘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전자통신 산업의 원조격인 라디오는 1919년 마르코니의 무선전신기와 암스트롱의 피드백 회로 그리고 드 포리스트의 진공관이 결합돼 탄생했다. 라디오가 대량 보급된 것은 웨스팅하우스가 1920년 11월 피츠버그에 KDKA라는 세계 최초의 상설 방송국을 개국하면서다. 이어 프랑스(1921), 영국(1922), 독일(1923), 일본(1925)이 잇달아 방송국을 개국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 일본인들이 세운 경성방송국이 그 시초다.
이즈음 영국의 베어드는 십자가 모양의 이미지를 3야드 밖으로 전송할 수 있는 기계식TV를 완성한다. 당시 TV의 기술적 경이로움은 1927년 4월 8일 뉴욕타임스의 1면 머리기사 제목에 표현돼 있다.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며 보이기까지 하다-마치 살아 움직이는 사진처럼…’
2005년은 세계 전자통신기술 발전사에서 또 하나의 획을 긋는 해가 될 판이다. ‘손안의 TV’ 또는 ‘테이크 아웃(Take Out) TV’로 불리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한국에서 등장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라디오에서 TV로 옮겨가기까지는 대략 50년, TV에서 DMB로는 30여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DMB는 무선전신 이후 100여년 동안 출현했던 전자통신기술의 총체적 집적물인 셈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0∼20년 이내에 DMB를 능가할 새 집적물이 등장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요즘 시대에 기술의 진보만큼 사람들에게 확신과 신념을 주는 것은 없는 듯하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일까. DMB의 출현과 함께 포스트DMB를 기대해야 하는, 기술진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인간의 속성이 오히려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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