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화돼 있지 않은 규제권을 앞세운 횡포’
‘권력기관들의 줄세우기’
지난 1년여간 인터넷프로토콜(IP) TV를 중심으로 한 통신·방송 융합과 관련된 논의를 두고 터져나온 비판적 여론이다. 시장경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리의 법체계와는 상반되게 기술의 발전으로 출현한 서비스를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진입부터 차단하는 시대착오적 상황을 지적한 말이다.
IPTV는 인터넷망을 통해 고선명(HD)TV급 방송과 양방향 데이터 서비스 등을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개방형 IP망을 활용하는만큼 구축 비용이 저렴하고 기존 인터넷 고객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통·방 융합의 핵심 서비스로 부각되면서 통신·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규제기관까지 나서 주도권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공회전’ 거듭해온 IPTV 논란=올 들어 IPTV 문제를 해결하자며 열린 논의의 장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간의 정책협의회 이외에도 국무조정실 멀티미디어 정책협의회, 국회와 학계가 주관한 포럼과 세미나 등 20여 차례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안이 민감해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그간의 논의가 본질을 외면하고 상당히 오도돼 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새로운 융합형 서비스를 어떻게 도입해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편익과 후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증진시킬 것인가 하는 정책목표는 뒤로한 채 ‘IPTV가 통신인가, 방송인가’ ‘규제권은 누구에게 있나’ ‘규제기관 통합은 어떻게 누가 할 건가’ 등으로 확대돼 끝도 없는 입씨름으로 이어졌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논란을 벌이는 주체들을 두고 “서로 이해가 너무 부족하고 교육이 안 돼 있다”면서 “결국은 큰 그림을 위에서 그려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가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눈치만 보는 사업자들=문제는 논의가 규제기관 간 대립양상으로 벌어지면서 IPTV서비스를 준비해오던 사업자들만 등이 터지는 꼴이 됐다. KT는 올 초 약 500억원을 투입해 IPTV 방송센터 구축을 위한 입찰을 무기한 연기했다. 하나로텔레콤 역시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전화(VoIP), 방송 등을 묶은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준비중이나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의 반대와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방송위는 급기야 정통부와 한국전산원이 통·방 융합 인프라로 추진해온 광대역통합망(BcN) 시범사업 중 IPTV 기술 및 서비스 개발은 자신의 몫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BcN 시범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던 지상파방송 4사는 걸음을 멈춰 방송위의 눈치만 살피고 있고, 통신사들은 “기존 BcN 시범사업의 틀에서 논의하자”며 정통부 측 손을 들어줬다.
결국 가장 밀접한 규제기관의 이해와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서비스 개발과 산업육성은 서둘러야=이 과정에서도 공통된 목소리는 있다. 지상파방송사와 통신사업자들은 “누가 규제권을 갖든 먼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지털방송·IT기술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소모적 논의로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는 얘기다. 지상파방송 4사는 BcN 시범사업을 통해 IP망을 근간으로 한 디지털방송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했다.
변재일 의원(열린우리당)은 “SO들이 초고속인터넷을 전기통신사업법에서 하듯, IPTV를 방송법상 별정방송에라도 넣어 조기에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은 “규제기구 통합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고 앞서 공영방송의 구조개편 등까지 점검해봐야 할 문제”라면서 “서비스 및 기술개발은 어떤 틀에서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기구 통합 논의와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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