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방송위의 DMB 해법

 역시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방송위원회가 지난 19일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재전송을 허용한 건 언뜻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처럼 보인다. ‘허용’이냐 ‘불허’냐가 최대 쟁점이었으니 끝장을 본 셈이다.

 하지만 속 내용을 들여다 보면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제자리 걸음에 불과하다.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결론과는 거리가 멀다. ‘지상파를 재전송해야 한다’는 의무 재전송이 아닌 조건부 허용이다. 방송위 발표는 ‘재전송 허용’이란 문구보다 그 앞에 자리잡은 ‘사업자 간 합의’라는 단서에 무게가 실린다. 양 당사자 간에 도저히 합의가 안 되니 심판을 기다렸는데 공을 다시 되둘려 준 셈이다. 그러니 싸움이 그칠 리 없다.

 물론 진일보한 면도 있다. ‘허용’이란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혹평한다면 방송위의 면피성 결정이다. 상찬한다면 방송위의 고뇌에 찬 결단이다.

 이제 남은 것은 공을 돌려받은 선수들 간 ‘전투 재개’뿐이다. 티유미디어로서는 지상파 재전송 허용이란 대세를 얻게 됐으니 일단 절반의 성공이다. 방송사들도 ‘양측의 합의’라는 완충장치를 얻었다. 방송위 발표를 뒤짚으면 합의가 안 되면 재전송도 불가능하다. 방송사들은 시간도 벌고 지상파DMB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여유도 생겼다.

 양측의 전투가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태껏도 자율 합의가 안 돼 이 난리법석이었는데 이제와서 무 썰듯 즉각적인 해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수세에 몰린 지상파사업자들의 백기투항을 기대하기 힘들다. 거룩한 명분은 차치하고라도 제 밥그릇을 순순히 내주는 법은 없다. 지상파사업자(방송사가 주류)가 위성(티유미디어)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반면 티유미디어는 이미 위성을 띄워 놓고 전국망을 깔아 놨다. 시범방송도 마무리 단계고 곧 본방송에 돌입한다. 거대 자본이 뒤에 있고 통신시장에서 다진 마케팅 노하우도 갖추고 있다. 고객 친화력에서도 앞선다고 자평한다. 준비 상황만 보면 최근에야 사업자가 선정된 지상파는 위성에 상대가 안 된다.

 지상파에도 강력한 무기는 있다. 바로 무료 서비스다. 국민의 정서적 지지를 얻고 명분도 앞선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스스로의 목을 죌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퇴로를 차단한 모습이다. 지상파사업자 전국망 구축비용은 2000억∼2500억원이다. 운용자금도 필요하다. 80만원 이상인 단말기 보급도 일선 유통망이 움직여야 하지만 여기에는 추가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 국민 입장에서야 값싼 단말기에 무료로 최첨단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업자가 이 정도 출혈을 감수하고 수익을 창출할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위성이라는 무서운 경쟁자가 있는 판이다.

 DMB가 디지털TV 전송 방식의 재판이 되어선 곤란하다. 재전송도 허용하고 지상파, 위성사업자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윈윈 모델을 찾아야 할 때다. 지상파가 위성과 대등한 수준이 될 때까지 단계별 차등 재전송을 해도 좋다. 지상파의 투자와 마케팅 비용이 문제라면 상징적 수준의 부분 유료화를 검토하면 어떨까. 소비자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방송사 사정상 재전송이 도대체 불가능하다면 종합채널사업자를 만들어 송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자.

 DMB사업의 열쇠인 재전송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위성이건 지상파건 어느 한쪽이 거꾸러지면 좋겠지만 국가 경제의 낭비만 초래할 것이다. 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굴복을 강요해선 답이 안 나온다. 방송위 결정이 책임 떠넘기기이건 당대의 묘책이건 간에 당사자인 통신사와 방송사는 이를 해법의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