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2부)도약의 씨앗들⑧통신용 모뎀칩

⑧통신용 모뎀칩

 지난 2003년 4월 1일 뉴욕증시에서 퀄컴 주가가 전일 대비 4% 폭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가 cdma 2000 1x 칩세트를 개발 완료하고 자사 단말기에 탑재할 것이라는 본지의 보도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퀄컴 사업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내수·수출 단말기에 탑재하겠다는 삼성전자의 계획과 달리 일부 내수용 단말기에 탑재하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퀄컴의 경고 메시지, 칩 성능에 대한 확신 부족, 삼성전자의 전략적인 판단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03년에는 한차례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 LG전자 등 국내 단말기 업체가 세계적인 단말기 기업으로 자리 매김하고 연구 투자가 크게 확대되면서 차세대 단말 분야에서는 단말기 개발과 함께 칩 개발이 병행될 정도로 초기부터 원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일부 전문 통신용 칩 반도체 업체들도 탄생, 퀄컴과의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동통신용 모뎀 칩 시장도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떡이 아닌 셈이다.

국내에서 통신 모뎀칩 개발에 가장 노력하고 있는 기업은 역시 통신·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현 3세대(G) 단말기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최대 7배 빠른 고속하향 패킷 접속(HSDPA:High Speed Downlink Packet Access)용 시스템용 모뎀칩(SBM5100)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HSDPA는 현재 CDMA보다 7배 정도 빠르게 영상 및 음성을 전송할 수 있는 고속데이터전송기술로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휴대전화로 얼굴을 보며 전화할 수 있는 영상통화를 끊김 없이 할 수 있고 영화 한편을 단 1∼2분만에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전세계 휴대폰 업체 가운데 가장 앞서 단말기,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련 반도체 개발까지 마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올해 3.5세대 휴대인터넷인 와이브로의 칩세트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 회사는 연내에 칩세트 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 상용단말기와 시스템을 공급,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솔루션을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와이브로는 시속 60km로 이동하면서도 1Mbps급 속도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무선통신 서비스로 2006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말 중국의 3세대 이동통신 방식인 TD-SCDMA(시분할 연동코드 분할 다중접속:Time Division-Synchronous CDMA) 칩 개발에도 성공했다. 그동안 소개돼 왔던 몇몇 TD-SCDMA 단말기는 모뎀칩 이전 단계인 보드 상태의 부품(FPGA)을 사용했지만 삼성전자는 전용 모뎀칩을 탑재해 휴대폰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중국 다탕사, 네덜란드 필립스사와 공동으로 ‘T3G 테크놀로지’라는 모뎀칩 개발 전문업체를 설립해 TD-SCDMA 모뎀칩을 개발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모뎀칩은 정보통신총괄과 반도체총괄이 함께 작업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전문 통신칩 업체와의 협력도 계속 유지하는 한편 자체 솔루션을 확보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노키아·TI 등과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커미트사와 공동으로 TD-SCDMA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에 칩부터 단말기, 시스템까지 모두 국산이 가능해졌다.

대형 반도체 기업들의 점유물로만 여겨졌던 이동통신 모뎀칩 시장에서 국내 전문 기업들도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오넥스(대표 전성환 http://www.eonex.com)는 지난해 연말 퀄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cdma2000 1x EVDO(모델명 N1100) 모뎀 칩 개발에 성공하고 국내외 유명 휴대폰 업체에게 공급을 시작했다. 특히 N1100은 인터넷전화(VoIP),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 및 자바 등의 솔루션이 잘 돌아가도록 설계했을 뿐 아니라 국내 단말기 업체들의 위피 미들웨어 포팅이 용이하도록 위피용 모듈을 함께 제공한다. 이 회사는 모뎀 칩 판매를 위해 퀄컴과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기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다국적 반도체업체 필립스와 LSI로직 등도 모두 기술력과 마케팅력에서 퀄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을 정도라는 점에서 이 회사의 분전은 주목할 만 하다.

이오넥스는 특히 올해 하반기에 700만 화소 카메라 인퍼페이스 모듈, 고속 동영상 처리를 위한 MPEG4, H.263 및 H.264 포맷, 3D 그래픽 가속 엔진, 블루투스 모듈 등이 내장된 후속 칩 ‘N1150’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03년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WCDMA 모뎀칩을 개발한 바 있는 매커스는 최근 사업을 재개했다. 통신시스템 전문 개발업체인 솔라통신기술(대표 전용태 http://www.solartt.co.kr)과 WCDMA 모뎀 칩 개발과 관련한 전략적 제휴 및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번에 매커스가 공급하는 WCDMA 모뎀 칩 (CSM16)은 12.2Kbps의 음성 기준으로 16 유저(user), 384Kbps의 데이터로 1 유저 지원이 가능하며, 멀티칩으로 구성할 경우 최대 2Mbps 까지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휴대폰 모뎀칩은 높은 기술 장벽, 고 신뢰도, 퀄컴의 아성으로 시장 진입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국내 이동통신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더 이상 못 오를 나무는 아니다”며 “그러나 결국은 표준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상당한 금액의 라이선스료를 내야 하는 만큼 표준 확보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

◆인터뷰-매커스 박선강 전무

“다 개발해놓고 시장이 열리지 않아, 기다렸던 지난 2년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 시장이 열리니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최근 WCDMA 시장에 재 도전을 선언한 매커스의 연구개발 담당인 박선강 전무(40)는 2∼3년간 숙성된 자사의 통신 기술과 칩으로 통신강국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IMT2000 사업자 선정시 통신용 칩을 국산화하겠다는 생각으로 IMT2000 사업자인 SK텔레콤 측과 손을 잡고 공동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단말기용 칩과 기지국에 사용될 수 있는 모뎀 칩입니다. 우리는 여느 개발업체와 달리, 경쟁력 있는 칩 구현에 집중했습니다.”

매커스는 3세대 통신의 특성이 멀티미디어 데이터 통신이라는 점에 주목, 단순히 음성 통화의 커버리지를 넓히기보다는 데이터 전송량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16채널짜리 기지국 모뎀 칩이다. 당시 국내외 다른 칩 개발업체들이 디지털신호터리프로세서(DSP)에 소프트웨어 형태적으로 구현했으나, 매커스는 ‘하드와이어드’ 방식으로 구현, 성능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개발된 기술이 즉시 상용화되지 못했다. IMT2000 서비스가 차일피일 미뤄졌기 때문이다. 박전무는 “금방 진행될 것 같던 사업이 시장의 문제로 점점 연기되었고 수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작품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실무자들은 제품의 완성도를 위해 실제 상황에서 시험을 해야하는 데 사업자든 장비업체든 모두 손을 놓고 있었던 터라, 마무리하는데 애로가 많았다고 박전무는 전했다.

박전무는 “당시에 고생했던 것이 이제는 결실을 볼 수 있을 거 같다”며 “기술적으로는 자신 있으니 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동안 변한 스펙에 맞춰 업그레이드하면 3세대 통신 칩에서 국내 반도체가 사용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