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라는 테마 안에서 스포츠란 소재는 전자게임이 탄생될 초창기부터 자주 활용되어 왔다. 야구라는 소재도 그 예외는 아니어서 비디오게임이 출시 되기 전인 기계식 게임에서부터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다.
야구가 그만큼 대중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야구게임은 야구 자체의 소재는 그대로였지만, 전기·전자·통신으로 이어지는 IT기술의 발전 단계에 맞춰 다양항 플랫폼으로 출시되고 있다. 최근엔 AI(인공지능)와 3D,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이 접목되면서 보다 사실에 가깝고, 유저끼리 네트워크에 물려 대전하는 실시간 야구게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야구게임의 변천사를 3단계로 나누어 정리한다.게임 역사에서 초창기를 장악했던 플랫폼은 아케이드 (업소용)다. 야구 역시 초창기를 주도했던 게임들은 바로 아케이드게임이었고,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데이터이스트사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출시해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스타디움 히어로즈’다. 국내에서는 ‘신야구’란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바로 그 게임이다.
이 게임은 일반 야구게임과 달리 슈퍼 용병 시스템을 도입해 게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마구와 수퍼 타자를 구현해 당시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특히 빠른 게임 진행과 아케이드 특유의 간편한 인터페이스 역시 호평을 받아 한때 국내 아케이드 시장을 점령했던 때가 있었다. 이 외에 남코의 ‘패미스타 히어로즈’, 세가의 ‘월드시리즈 베이스볼’ 등 다양한 아케이드용 야구게임이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시대가 지나 90년대 초반 이후 IBM 개인용 컴퓨터(PC)보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PC플렛폼을 기반으로 야구 게임이 전성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지금은 전설 속의 야구게임으로 남아있는 어콜레이드사의 ‘하드볼’시리즈다. 시리즈 7편까지 출시된 이 게임은 한 때 PC 야구 게임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PC기반의 게임답게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등장, 호평을 받았다. 특히 에디터 기능을 삽입해 국내 선수들을 투입 가능해 많은 재미거리를 주었다.
PC와 함께 야구게임을 안방으로 옮긴 것이 콘솔, 그 중에서도 한시대를 풍미했던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이었다. 지금은 골동품 취급을 받고 있지만 이 게임기용으로 출시된 코나미의 ‘실황프로야구’는 야구게임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이 게임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SD카툰풍의 그래픽으로 야구게임 발전사에 새물결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코나미는 콘솔용 스포츠게임 분야의 독보적인 개발사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야구 게임은 최근 크게 2가지 양상을 보인다. 하나는 PS2나 X박스 등 고퀄리티 콘솔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향상된 PC기반을 통한 네트워크형이다. 거대 공룡기업 EA에서 제작한 ‘MVP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메이저리그를 배경으로한 현존하는 최고의 야구게임으로 불리우며 지금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네트워크 기능을 활용한 온라인 야구게임도 큰 맥락 중 하나. 이미 일본에서는 ‘실황야구시리즈’가 온라인 버전으로 제작된 바 있으며, 국내에도 애니파크 (‘A3’ 제작사) 등 온라인게임업체들이 네트워크가 지원되는 MO형 야구게임을 개발 중이다.
네오플도 ‘신야구’란 온라인게임을 개발, 하반기에 오픈할 예정이다. 야구게임 전문가인 게임빌 김주영팀장은 “야구 게임 자체 특성상 온라인 네트워크 기능이 조금 부하가 있긴 하지만 현 게임 기술력의 발전 추세를 보아서는 머지않아 야구게임도 네트워크게임이 대세가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론 유무선을 아우르는 유비쿼터스형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야구계의 빅3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야구가 도입된 것은 100년전의 일이다.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한국명 길례태)가 황성YMCA회원들에게 야구공을 주면서 시작된 것.
기록상으로는 1906년3월15일 맨땅이나 다름없던 서울 동대문 훈련원(현 국립의료원자리)에서 ‘황성YMCA야구단’과 ‘덕어(독일어)학교’가 경기를 벌였다. 당시엔 공은 무명천을 감아 만들었고, 글러브는 헝겊으로 만든 손싸개를 사용했다. 명칭 역시 ‘Baseball’을 우리식으로 표현해 ‘베쓰뽈’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엔 ‘전조선야구대회’가 인기를 끌었는데, 1920년대 성동 원두의 서울 경성운동장(현 동대문구장)에 수 많은 조선인들이 모여들어 백구의 향연을 통해 식민지 국민의 울분을 쏟아냈다. 이후 만주사변 이후 일제탄압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가 광복 이후 각종 야구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로 접어들었다.
글자그대로 ‘동네야구’ 수준에 머물던 한국야구가 눈을 뜬 것은 1958년. 그해 10월21일 동대문구장엔 미국 메이저리그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한국대표팀의 친선 경기가 열려 2만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본격적인 대중화로 접어든 것은 60년대 이후 고교야구의 덕분이었다. 고교야구는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선동열, 김재박, 양상문 등은 지금은 감독들이지만, 당시엔 초고교급 스타였다. 우리나라는 이 과정에서 1977년 슈퍼월드컵 제패,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우승 등 야구강국으로 도약했다.
한국야구 100년사의 새 획을 그은 것은 군사정권 시절인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개막전 MBC(LG트윈스의 전신)이종도의 결승 만루홈런으로 붐을 형성한 프로야구는 이후 박철순, 최동원, 선동열, 장종훈, 이종범, 이승엽 등 수퍼스타들을 잇따라 배출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격상된 한국야구는 IMF를 계기로 세계로 뻗어나가 이젠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등 현재 9명이 메이저리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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