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몽상가들

베르툴리치 감독의 ‘몽상가들’은 유희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파리의 68혁명이 시간적 배경이지만, 프랑스 현대사회를 근본적으로 수정시켰던 정치적 접근은 수묵화의 안개나 구름처럼 은은하게 뒷배경으로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무삭제 심의 통과된 젊은 남녀의 성기를 비롯해서 가벼운 성적 유희들이다.

시네마 테크에서 미국 유학생 매슈(마이클 피트 분)는 프랑스 청년 테오(루이스 가렐 분)와 그의 일란성 쌍둥이 누이 이자벨(에바 그린 분)을 만난다. 테오의 부모가 여행을 떠난 빈 집에서 이 세 명의 영화광들은 함께 기거한다. 그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고 그 행동이 어느 영화에 나온 것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를 한다. 틀리면 벌칙이 부과된다. 지금도 영화광들 사이에서 자주 행해지는 이 퀴즈는 성적 유희로 연결된다. 테오는 벌칙으로 매슈에게 자기 누이와 섹스를 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거미의 계략’이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정치적 주제를 정면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다루었던 베르툴리치 감독은 할리우드의 달콤한 계략에 빠져 오리엔탈리즘의 잘못된 접근인 ‘마지막 황제’나 ‘리틀 부다’를 만들고 실패를 하다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몽상가들’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그의 대표작인 ‘1900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몽상가들’에는 삶을 탄력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대가의 시선이 살아 있다.

성적 금기와 정치적 금기가 동렬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주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가지 영역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완강한 보수적 사회체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힘이 성적 금기나 정치적 금기에는 들어있기 때문이다. 성적 금기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자주 정치적 질서를 와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몽상가들’의 뛰어난 점은 유희적인 성적 일탈 행동들 속에, 사회의 불안을 읽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도전적 몸짓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세 남녀가 함께 욕조에 들어가거나, 남매간인 테오와 이자벨이 벌거벗고 한 침대에 누워있는 신들은 사회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동들이다. 그것은 결국,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파리의 68혁명이 낡은 구질서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선악의 개념을 떠나서 ‘몽상가들’의 세 남녀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온몸으로 구질서에 저항하며 정치적 금기를 넘어선다.

베르툴리치 감독은 정색하지 않고 가벼운 유희로, 그러나 오히려 훨씬 더 선명하게 자신의 주제를 밀어붙인다. 지금의 금기는 미래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정치, 문화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데, 어떤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가? 이렇게 묻고 있는 영화가 ‘몽상가들’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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