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부산 광인리 해수욕장에서는 10만명의 관중이 운집한 대규모 행사가 벌어졌다.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을 열광케한 이날 이벤트는 다름아닌 e스포츠 경기. 온게임넷이 주최한 ‘SKY 프로리그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이같은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이 정도 규모라면 국내에서 열리는 어떤 이벤트에도 못지 않은 인기를 과시한 것. 한낱 아이들의 놀이로만 치부했던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디지털 시대의 대표 엔터테인먼트 코드로 자리잡았음을 입증해주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시장 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산업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스타크노믹스’라는 책의 저자들은 이 게임의 전략을 활용한 기업 경영 비법까지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e스포츠다. ‘스타크래프트’라는 트게임의 인기와 함께 성장해 디지털 시대의 대표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은 것이 e스포츠다.
e스포츠가 대중화됐다는 증거는 프로게이머들의 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프로게이머 SK텔레콤 T1의 임요환 팬카페는 현재 55만 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가입돼 있다. 왠만한 대중스타 보다 많은 수치다.
KTF 매직엔스의 홍진호,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의 이윤열 등 다른 프로게이머의 인기도 이에 못지 않다.
# PC방리그에서 e스포츠로
e스포츠란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98년 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유저들이 PC방에 모여 게임을 겨루게 되고 이것이 규모가 커진면서 각종 대회들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대회는 ‘스타크래프트’가 국민게임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e스포츠라는 신문화를 탄생시켰다.
초기 e스포츠 대회는 KIGL, PKO 등 리그 전문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케이블 게임전문 방송인 온게임넷이 개국한데 이어 MBC게임, 위성방송인 겜TV 등이 개국하면서 e스포츠 지평도 큰 변화를 겪는다. 우선 e스포츠의 주도권이 게임리그사에서 방송사로 이동한다. 인터넷 중심으로 활동해온 리그사와 달리 방송사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는 방송의 파워를 이용해 단기간에 스타리그 시장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게임방송의 개국은 e스포츠 시장 질적 변화를 가져온 동인이기도 하다. 다른 프로스포츠 처럼 단순히 직접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 것. 이 과정에서 임요환, 김동수, 홍진호 같은 대중적 스타 게이머들이 탄생하게 됐으며 프로게이머들이 각종 TV 광고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e스포츠의 팬층도 10∼20대 남성 중심에서 탈피해 30∼40대의 남성층과 10∼20대의 여성층으로 한층 폭넓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 프로스포츠로 성장하기 위한 과제
e스포츠리그의 대중화에 있어 또 하나의 기점은 바로 지난 해다. 기존 삼성전자, KTF에 이어 SK텔레콤과 팬택앤큐리텔 등 대기업들이 게임단 스폰서로 나서면서 명실상부한 프로스포츠로서의 모습도 갖추게 된 것.
SK텔레콤은 임요환을, 팬택앤큐리텔은 이윤열이라는 걸출한 선수들을 영입해 프로게임단을 창단한다. 2~3년 전만해도 e스포츠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이들의 스폰서로 나선 것은 e스포츠의 프로화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프로게임단의 연간 운영비는 인기 프로야구나 축구, 농구 등의 타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인 10억~2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팀 운영으로 인한 마케팅 효과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게임단을 창단한 KTF는 지난 5년간 게임단에 45억원을 투입한 결과 468억원 규모에 이르는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e스포츠 행사 개최 및 KTF 매직엔스가 언론에 노출된 횟수 등을 고려해 얻은 홍보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한 수치다.
같은 맥락에서 SK텔레콤도 지난 2004년 게임단에 20억원을 투입했고, 150억원에 이르는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e스포츠가 진정한 프로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SK텔레콤, KTF, 팬택앤큐리텔 등 3사를 제외하고는 게임단에 대한 지원이 열악해 프로게임단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고 있다. 또 다른 프로스포츠와 달리 대회를 방송사 중심으로 끌고 가다보니 아직 리그의 안정성도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e스포츠의 질적 발전 측면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넘어설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시급하다. 방송사나 게임사 중심으로 ‘워크래프트3’ ‘피파’ ‘카운터스트라이크’ 등 다양한 게임을 이용한 대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호응을 전혀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게임들이 직접 즐기는 재미는 검증됐으나 시청자들에게 보는 재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장현영 팀장은 “최근 협회는 ‘스페셜포스’ ‘카트라이더’ ‘팡야’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국산 온라인 게임을 e스포츠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며 “e스포츠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으로 탄생된 문화지만 진정한 대중적 엔터테인먼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타크래프트’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99년 3월은 이 세상에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방송을 처음 탄 날이다. 그러고보니 벌써 7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 7년은 길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참 짧게 느껴진다. 그 만큼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규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총 상금이 300만원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그마한 투니버스 스튜디오에 4강진출자가 모여 녹화로 방송을 제작했다. 그 당시에는 3명이 한방에 들어가 옵져버에게 동맹을 걸고 난 후 옵져버는 자신의 커맨트센터를 한쪽 구석으로 재빠르게 옮겨야했다. 캐스터가 마린(marine)을 ‘병사’로 부르기도 하고, ‘게이머’라고 칭해야 할 지 ‘선수’라고 칭해야 할 지 용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스포츠처럼 진지하게 중계한다는 것이 참 코믹할 것 같아서 시작한 그 방송에 많은 시청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이러한 호응을 바탕으로 녹화방송은 생방송으로 이어졌고 전용스튜디오도 마련됐고 급기야 작년엔 10만의 인파속에서 결승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일보전진 아니 십보전진으로 지금까지 왔고 e스포츠는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다른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e스포츠에는 처음에 기업과 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없었다. 프로게이머와 감독들은 기업의 후원없이 그들의 꿈을 위해 끼니를 걸러가며 연습에 몰두해야만 했고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대회 주최측은 수십개의 기업에 제안서를 돌리며 마케팅효과를 인식시켜야 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프로농구가 출범 당시 정부와 기업의 대대적인 참여, 그리고 언론의 드높은 관심을 확보한 것에 비하면 e스포츠의 태동은 정말 초라하다 못해 비참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프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국내스포츠는 e스포츠가 유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프로스포츠에는 Fan과 Money와 Starplayer가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엄청난 팬이 존재를 하고 그들의 주머니 속에서 돈이 흘러나와 스타플레이어를 양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양산된 스타플레이어는 다시 팬층을 확보해 나가 결국 선순환구조를 그려나간다.
최근 e스포츠는 팬층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고 입장수입 등은 없지만 마케팅효과가 높다고 판단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당연히 선수들은 더많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얻기위해 노력하고 게임에 집중한다. 물론 경기력이 높아지는 건 두말할나위 없다. 결국 팬들은 열광하고 시청률과 관심은 증폭된다. 프로축구나 야구 등이 관중이 줄어 고민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e스포츠는 진정한 프로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각종 제도가 정비돼야하고 전용경기장 등 기본인프라가 확충돼야 하며 선수층이 더욱 넓어져야 한다. 하지만 e스포츠는 소위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쌓아 올라왔다. 어느날 갑자기 정부나 기업이 주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시도와 검증 속에서 그리고 팬들의 진정한 관심과 사랑속에서 커 나갔다.
필자는 지금 연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후배PD에게 가끔씩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만족하려고 방송하지말고 시청자를 만족시키려고 방송을 하라”고. 팬들이 외면하는 문화는 결코 대중문화가 될 수 없다. e스포츠를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에 만족하면 절대 안된다.
팬들의 NEED는 언제나 변하고 그들의 NEED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훈기자 김태훈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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