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방송 융합정책, 이젠 원칙을 세우자](1)원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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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인 유료화를 검토중이다”(1월 10일 YTN ‘백지연의 뉴스Q’에 출연해)

“원칙적으로 무료, 보편적서비스다. 방송위와 방송사가 결정할 문제다”(1월 25일 정통부 기자실에 들러)

지상파DMB 유료화에 대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발언이다. 유료화에 긍정적인 신호가 보름만에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언론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했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정부 부처 수장이 보름 사이에 말을 바꾸면서 일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부 정책에 흠집을 냈다.



#2

지상파TV 콘텐츠 전송 41.8%, 지상파TV 콘텐츠 혼성 편성 41.1%, DMB 전용 콘텐츠 17.1%.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지난해 시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DMB서비스 수용도 조사 결과다. 대부분 DMB의 콘텐츠로 지상파TV방송을 선호한다는 결과다.

그런데 방송위원회는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지상파TV 재송신 불허 결정을 내렸다. 위성DMB의 지상파TV 재송신으로 피해를 보는 매체는 경쟁 매체인 지상파DMB와 지역 지상파방송사뿐이다. 시청권을 가장 중시해야 할 방송위가 정작 정책 결정엔 철저히 배제한 셈이다.



통신방송 정책이 겉돈다. 일관성도, 원칙도 없다. 매체간,사업자간 형평성도 잃었다. ‘뉴미디어 육성’은 10년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구호일 뿐이다.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 방송과 통신의 형평성과 원칙은 그때그때 달리 적용됐다. 정치적 힘의 논리에 좌우되기도 했다. 무력 시위와 특정 세력의 이해 관계에 따라 정책이 흔들린다.

그 사이 사업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속만 끓였다.

스카이라이프는 3년간 지상파TV를 재송신하지 못했다. 티유미디어는 약 1년간 공전하는 위성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상파DMB 준비사업자와 관련 장비업체 역시 지상파DTV 전송방식 논쟁의 피해를 떠안았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POD(Point Of Deployment) 분리 강제와 유예의 순환속에서 디지털 전환에 가속을 붙이지 못했다.

방송위와 정통부만이 방송과 통신 융합의 이익을 본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위상이 날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커진 힘 만큼 정책을 제대로 펼칠 것인 지는 미지수다.

IPTV가 그렇다. IPTV를 방송위는 별정방송으로, 정통부는 부가통신사업으로 규정한다. 규제 권한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시청자 눈으론 그저 TV방송일 뿐이다.

케이블TV와 IPTV를 같은 규제의 틀에 둬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레 나온다. 이게 당장 어려우면 일단 IPTV서비스를 허용하되, 케이블TV사업자에 지워진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정책을 펴면 된다. 규제 개혁이라는 참여 정부의 국정과제와도 상통한다.

그러나 방송위와 정통부는 이런 논의보다는 ‘별정방송’ ‘부가통신’의 주장만 굽히지 않는다. IPTV를 보겠다는 시청자 권리는 또 한번 ‘무시’되고 ‘묵살’됐다.

두 기관의 주도권 다툼은 일면 이해할 수 있다. 방송의 막대한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방송과 산업적 영향력이 큰 방송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정책을 주도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을 세우려는 노력만큼은 애써 외면했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은 “첨예한 갈등 관계에 있으면 상대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입견과 전제를 깔고 테이블에 앉는데 이래선 접점을 못 찾는다”라며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 공정 경쟁과 매체 균형 발전, 시청자 편익 증대 등과 같은 기본 원칙을 세우고 선입견을 배제하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원칙을 세워야 줏대있는 정책이 나온다.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나올 일부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지난 8일 방송위,정통부,문화부 등 3개 부처와 국무조정실, 청와대 관계자 등이 참여한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 설치 실무TFT’가 정식 발족했다. 통합 기관과 법제 논의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의 관심사는 온통 논의를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쏠렸다. 벌써부터 TFT의 한계와 구조개편위의 결론이 예상될 정도다. ‘구조개편위를 어떻게 만들까’에 앞서 ‘어떤 원칙을 가져갈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신화수·유병수기자@전자신문, hsshin·bjorn@

◆ 지상파DMB의 경우 - 행정 독립성이 흔들린다

지상파DMB 정책의 기본 전제는 무료화다. 그래서 지상파TV와 비지상파TV군을 나눠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다. 그런데 지난 1월 KBS·MBC·SBS·EBS 등 방송사와 KT·KTF·LG텔레콤 등 통신사업자의 7자 협의체는 유료화를 추진키로 합의하고,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드러났다.<본지 1월 13일자 1면, 3면 참조>

논란이 확산되자 정책 당국이 무료 원칙을 재천명했다. 유료화 논의는 수그러들었지만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유료화로 바꾸면 무료화를 전제로 지상파방송사에 사업권을 할당한 정책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유료화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만 있을 뿐 정작 이같은 기본 원칙은 아예 거론조차 안된다. 얼마나 원칙이 실종했는 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 그대로 고집하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원칙마저 흔들려서는 안된다. 그간의 통신방송 정책을 보면 원칙이 불투명하며, 그나마 제대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디지털TV 전송방식 논쟁이 그랬다. 전혀 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 정부는 스스로 확정,발표한 정책을 재검토했으며,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결정 과정에 이해 당사자인 방송사와 언론노조가 직접 참여한 것도 문제다. 행정의 독립성을 해쳤기 때문이다.

방송위가 검토중인 종합편성PP 도입도 마찬가지다. 그간 케이블TV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다가 위성DMB의 재전송 불허 방침의 대안으로 도입을 검토중이다. 정통부가 IPTV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TV방송의 냄새를 뺀 ‘아이코드(iCOD:인터넷콘텐츠온디멘드)’라는 새 이름을 내건 것도 원칙 보다 우회해서라도 역풍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복잡한 이해 관계와 당국의 조정 능력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국회나 청와대까지 개입하기도 한다. 한 정책 당국자는 “아무래도 골치 아프니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정책 당국도 이원화, 삼원화된 상태다.

정책 당국 모두 공유하는 원칙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해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 지상파 방송 독과점에 형평성 실종

“이렇게 차별할 수 있습니까” 비 지상파TV 방송사업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위성DMB사업자인 티유미디어는 후방산업계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했지만 그간 정책적인 배려가 거의 없었다. 지난해 방송법 개정도 정부보다는 국회의 힘을 빌었다. 지상파TV재송신도 결국 허용되지 않았다.

지상파TV방송사 중심의 지상파DMB는 달랐다. 정부는 지난해 예정됐던 위성DMB 상용화 시점을 지상파DMB방송 일정에 맞춰 늦췄다. 지상파TV방송사엔 아예 사업권도 할당했다.

물론 지상파DMB는 보편적 서비스인 무료방송이어서 정책적인 배려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투자까지 기피하면서 통신사업자에게 손을 벌리는 지상파DMB를 지나치게 배려한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

형평성 시비는 이 뿐만 아니다. 케이블TV사업자들은 “IPTV가 결국 방송인데 왜 통신사업자에게 우리와 같은 진입장벽을 두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정통부가 방침을 바꿨지만 지난해 BCN 시범 사업에 탈락한 것도 SO업계엔 앙금이 남아 있다.

통신사업자들도 할 말이 있다. “케이블TV사업자는 별 장애 없이 초고속인터넷사업을 하는데 왜 우리에겐 방송을 못하게 하느냐”라고 볼멘 소리다.

융합이 급진전하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형평성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왜 저쪽은 봐주면서 우리만 어렵게 하느냐”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특이한 것은 불만이 지상파방송사에선 그다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통신사업자와 SO들도 대놓고 지상파방송사를 겨냥하지 않는다. 지상파방송 독과점이 정책 왜곡의 한 원인일텐데 왜 누구도 건들지 않을까.

한 통신사업자 관계자는 “그걸 꼭 얘기해야 압니까”라고 되묻는다. 막강한 힘을 가진 지상파방송사를 건드려봤자 득될 게 없다는 얘기다.

방송위나 정통부도 정책 결정에 형평성을 중시한다. 방송위는 ‘매체 균형 발전’의, 정통부는 ‘공정 경쟁’(통신)의 원칙을 내건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지상파방송사나 통신사업자의 논리를 반영하기 일쑤다.

사진: 정부 뿐만 아니라 국회까지 나설 정도로 통신방송 융합 정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하지만 정책 당국간에 공유할 원칙이 없는 데다 ‘프로토콜’도 맞지 않아 논의가 겉돌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2월 15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방송과 통신이 하나되는 시대’ 정책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벌이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