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경호 엔터기술 사장(1)

(1) 늦깎이 대학생 

10여 년 전이다. “인생의 정열을 바치겠다” 결심하고 현 엔터기술의 전신인 건음을 설립한 게 94년 봄이었다. 이 전만 해도 내 인생은 남보다 한참 늦었고, 항해는 하고 있지만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시간이었다.

유년 시절 아버님은 지방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했다. 그런 아버님을 보며 ‘사업이란 역동적이며 재미가 있겠다’는 막연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사업이 어려워 빚쟁이가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사업은 결코 안정적인 것만이 아니다’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도 뜻이 없었고,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2년을 방황했다. 그러다 군대에 가고 복무를 마칠 즈음 온 나라는 86 아시안 게임, 88올림픽 준비 등으로 들썩이는 걸 봤다. 군대도 마쳤고 할 일을 찾아야만 했던 나는 국제화나 세계화 시대라는 낯선 단어들을 접하며 관광 서비스 산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길을 열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영어며 관광학 등을 몇 달 동안 독학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 호텔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 호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고교 졸업장으로는 넘기 힘든 학력의 벽에 부딪쳤다.

‘대학을 가자’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지식 습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또래보다 5년이나 늦은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학비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야간 대학에 갔다. 낮에는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로 달려갔다. 힘들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매일 12시가 넘어 귀가하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벽반 부기 학원을 다녔다. 지금도 그 새벽 종로 거리의 아련한 추억은 잊기 힘들다.

서른을 바라보던 나이에 학생이던 나는 경영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재무를 익힐 수 있는 세무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2∼3년을 준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살림은 집사람이 조그만 가게를 운영해 꾸려나간다고 하지만 가장이 언제까지 공부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을 때가 서른 한 살이었다. 나이가 문제였지만 성적이나 실력만큼은 자신있었던 터라 대기업 취업은 걱정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취업 제한에 걸려 대기업 입사 자격마저 주어지지 않았고, 어디를 가나 나이는 걸림돌이었다.

다양한 취업의 문을 두드리던 나는 결국 한 중소기업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곧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그곳은 전기 플러그에 꽂는 방향제의 전자칩을 만드는 영세한 회사였는데 규모도 작은데다 인원이 많지 않아 내가 책임져야 할 일과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능력도 인정 받아 입사 몇 개월 만에 총무, 회계, 영업,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업무를 도맡게 됐다. 시작은 늦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동년배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 생각하면 경영수업의 일환이기도 했고, 비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재 엔터기술의 휴대용 노래반주기내에 들어가는 핵심역량인 반도체집적(ASIC)기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전자 관련 지식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회사는 사장이 사업을 정리하면서 오래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나도 자연스레 소중한 사회 공부 한 편을 끝 마치게 됐다.

leeenter@enter-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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