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1부)칩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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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상상하라, 그러면 실현된다

‘상상해라 그러면 실현된다.’

지난 1946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는 세계 인류사에 기록에 남을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무게 30톤, 그 당시 한 마을 전체의 사용전력을 넘어가는 120KW의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 거대한 기기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복잡한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한 것이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 기기는 향후 포탄의 궤적을 계산하는 데 사용됐다. 이 기기가 바로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ANIAC)’이었다. 애니악에는 반도체 역할을 하는 진공관 1만 8800개, 저항기 7000개가 들어가 있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구입하는 PC의 두뇌인 CPU에는 1억 2500만 개의 반도체가 들어있다. 60년 사이 7000배 가까운 성능개선이 이루어진 셈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83년 개발한 64Kb램의 경우 신문 반 페이지에 대한 기억 용량을 제공했지만 20여년이 지난 1Gb D램은 8400페이지의 신문을 저장할 수 있다.

칩은 인류가 탄생시킨 어느 제품보다 가장 빠른 진보를 이뤄왔다. 우스개 소리로 만약 자동차가 반도체의 기술만큼 빠르게 발전했다면 1리터에 수천 킬로는 달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18개월마다 칩의 처리속도와 메모리 용량이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칩 기술의 발전은 전자기기의 가격을 낮추고 성능을 높이는 한편 수 많은 새로운 기기를 탄생시키고 있다. 라디오, TV, 카메라, MP3플레이어, 심지어 인터넷 등도 반도체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제품들이다. 90년대 초반 LG전자 중앙연구소 디지털 TV개발팀에는 방 하나를 가득 메운 수 개의 랙(회로기판을 쌓을 수 있도록 한 적층대)가 놓여있었다. 그 무렵에는 수개의 랙에 적층된 회로 기판을 통해 디지털 TV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칩 3개 만으로도 그 보다 훨씬 개선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만약 칩에서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디지털 TV역시 상상속의 제품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 더 작게, 더 빠르게= 칩 기술의 발전사는 ‘더 작게, 더 빠르게’로 요약된다. 칩의 기본 동작 단위인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작게 만드느냐에 따라 칩의 성능이 좌우된다. 인텔이 지난 7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004에는 트랜지스터가 2300여 개 정도가 들어 있었으나 HT 펜티엄 4에는 1억 2500여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있다. 크기는 거의 같지만 내용물은 1만배 이상 많아진 셈이다. 칩을 더 작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정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칩이 알려지기 시작한 70년대 초반의 반도체 공정은 수십 미크론 급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전자는 1000배 가까이 성능을 개선한 60나노급 공정기술을 발표했다. 나노 기술을 이용할 경우 현재의 기가 비트급보다 1000배 이상 용량을 늘린 테라(10의 12제곱)비트급의 집적도를 가진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나노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칩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게 만들 수 있게 된다. 더욱 저렴하게 칩을 만들 수 있어 다양한 곳에서 응용될 수 있게 된다. 테라비트급 반도체가 개발되면 현재의 슈퍼컴퓨터가 데스크톱 크기로 작아질 수 있다. 손톱 만한 크기의 칩 한 개에 웬만한 도서관에 있는 모든 도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칩 기술 속도가 지속될 경우 인간이 얘기하는 모든 말들을 인식하고 번역하는 자동번역기가 2010년 경에 탄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어쩌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 연수를 갔던 최근의 세태는 앞으로 10년 뒤에는 추억의 얘기거리가 될 지 모른다.

▲ 칩 하나로 모든 기능을= 반도체 업계의 최근 10년간의 화두는 소위 ‘시스템 온 칩(SoC)’에 누가 먼저 근접하느냐다. 시스템 온 칩은 메모리, CPU, 로직 등 다양한 반도체를 하나의 칩에 구현시켜 반도체 하나가 아예 전자기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자 제품에서는 가히 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의 반도체로 구현된 조그만 박스를 디스플레이에 연결하면 TV로도 컴퓨터로도 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래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휴대폰이다. 휴대폰을 통해 TV를 보기도 하고 MP3플레이어를 듣기도 한다. 또 이를 통해 인터넷을 하기도 하며 디지털카메라로도 쓸 수 있다. 현재 휴대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반도체가 필요하지만 수년안에 이 같은 모든 기능을 지원하는 칩이 탄생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반도체의 사촌 격인 LCD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LCD는 사실상 반도체와 쓰는 재료만 다를 뿐 반도체와 거의 유사한 공정과 기능을 통해 구현된다. 반도체 업계에서 시스템 온 칩이 궁극적인 목표이듯이 LCD업계에도 ‘시스템 온 글라스(SoG)’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LCD에 반도체를 모두 내장함으로써 LCD 하나 만으로도 모든 기능을 수행하자는 것이 SOG의 목표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가능해 지는 것도 SOG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은 사람의 생각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1952년에 탄생한 아톰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걷는 로봇을 탄생시키는 데 그친 반면 반도체는 상상할 수 만 있다면 바로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반도체는 이제 전자 업계를 넘어, 자동차, 로봇 모든 분야의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21세기는 반도체가 전 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 김규태기자@전자신문, star@

*반도체 기술 발전의 끝은?

‘반도체 기술 발전의 끝은 어디인가.’

보다 집적되고 새로운 성능을 갖는 반도체 개발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미세공정의 정밀도를 높이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소재에 기반한 반도체 설계 시도도 있다. 어떤 방식을 쓰든 간에 좀더 작은 크기로 칩을 만들고, 점점 작아지는 칩 속에 더 많은 내용과 성능을 넣으려는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초미세공정 개발=인텔은 지난해 3분기 중 원자외선(EUV) 반도체 회로 인쇄 기술 기기와 이를 이용한 마스크 시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현재 실제 공정에서 사용중인 193㎚ 파장으로는 갈수록 작아지는 트랜지스터 및 부품 설계 도면에 맞도록 회로를 인쇄할 수 없다. 인텔이 최근 개발한 원자외선 인쇄기술은 현재의 광 파장보다 짧은 13.5㎚ 광 파장을 이용한다.

이강석 인텔코리아 연구소장은 “원자외선 마이크로 익스포저 툴과 마스크 시험 라인을 구축함으로써 최소 30㎚ 회로인쇄가 가능해졌다”며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무어의 법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소자 개발=아예 현재 개념을 벗어난 시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노 포토닉스’다. 나노 광소자로도 불리는 나노 포토닉스는 일반 반도체와 달리 전기를 흘려서 신호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광반도체의 핵심 기술이다. 나노 포토닉스의 핵심 기술은 패터닝 기술이다. 기존 반도체의 경우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저항의 증가로 신호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부품의 밀집도가 높아져 열 발생이 크지만 광반도체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현재 가장 앞서있는 반도체 기술이 70나노미터 공정이라면 나노 광소자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일반 반도체의 1000분의 1수준인 0.05㎚ 급의 패터닝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의 LG전자는 광반도체 개발을 위해 산업자원부 국책과제를 수행중이며 앞으로 10년내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신소재 개발=실리콘, 갈륨비소 등 현재 반도체의 재료 이외에 차세대반도체 구현을 위한 대안 소재들이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나노튜브(CNT)다. 탄소나노튜브는 전기전도도가 우수하고 열전도도가 다이아몬드와 유사하며, 강도, 높은 표면적 등을 지녀 차세대 반도체의 이상적인 소재로 꼽힌다.

회로 선폭이 10㎚ 정도가 되면 전자가 얇은 벽을 통과하는 양자현상이 일어나 제어가 불가능하다. 탄소나노튜브의 지름은 1∼20㎚ 정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반도체 집적화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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