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렉션]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30)블랙&화이트

피터 몰리뉴는 단 하나의 게임으로 게임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다. 유저가 신이 되고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상상을 실제 게임으로 완성한 사람이며 완벽한 창조의 정신으로 유행과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았던 외곬수로 유명하다. 그가 만든 ‘블랙&화이트’는 전후무후한 대작으로 갓 게임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갓 게임(God Game)’은 유저가 신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르를 총칭한다. 일반 게임들은 유저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기 위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1인칭슈팅게임(FPS)은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고 롤플레잉은 하나의 캐릭터에 유저가 모든 것을 쏟아 붓도록 설정한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도 유저에게 진영을 선택하도록 해 보다 포괄적 의미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든다. 이런 방식이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갓 게임은 시뮬레이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히 신적 지위와 역할을 유저에게 부여하기 때문에 건설 시뮬레이션인 ‘심시티’나 ‘심즈’와 많이 다르다. 이 독특하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이 누굴까? 바로 ‘블랙&화이트’를 개발한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이다. 그는 갓 게임의 창시작이자 완성자로 세계 게임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이 작품으로 새겼다.피터 몰리뉴가 처음 토러스(Tautus)라는 회사를 세우며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 들었을 때, 처음 만든 것은 DB 프로그램이었고 게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회사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때 코모도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하겠다는 연락이 오게 된다. 하지만 이 업체는 네트워크 제품을 제작하는 토러스(Torus)와 피터 몰리뉴의 토러스를 착각해 제안을 한 것이었다. 피터 몰리뉴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코모도어에서 무상 지원한 게임기 아미가 10대를 받았고 여기서 그는 게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아미가에서 독자적인 게임 개발에 착수한 피터 몰리뉴는 회사 이름을 토러스에서 불프로그(Bullfrog)로 변경했고 ‘파퓰러스’라는 게임을 세상에 내놨다. 이 게임은 유저가 신과 같은 존재가 돼 자신의 세상을 내려다 보며 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갓 게임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 이 타이틀은 피터 몰리뉴의 어린 시절 꿈이었던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는 것에 바탕을 뒀다. 이 게임은 큰 성공을 거뒀고 갓 게임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처음 선보인 게임으로 기록된다. 이 타이틀의 후속작으로 영토와 자원 관리를 중점으로 하는 ‘파워 몽거(Power Monger)’를 개발했으나 ‘파퓰러스’와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시작으로 피터 몰리뉴는 ‘신디케이트(Syndicate)’, ‘테마 파크(Theme Park)’, ‘던전 키퍼(Dungeon Keeper)’ 등 유수의 게임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들 게임은 모두 국내에 소개됐으며 특히 ‘신디케이트’와 ‘던전 키퍼’는 독특한 게임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던전 키퍼’는 확장팩과 속편까지 제작됐는데 유저가 악마가 돼 인간들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다.피터 몰리뉴가 새로운 회사 라이온헤드 스튜디오(Lionhead Studio)를 통해 완성한 작품이 바로 ‘블랙&화이트’다. 이 게임은 ‘샌드 킹(Sand King)’이라는 TV 드라마와 다마고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마고치와 연관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던전 키퍼’의 개발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피터 몰리뉴는 다마고치에 빠져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좁은 사무실에서 개발자들은 피터 몰리뉴의 다마고치가 울리는 삐삐 소리에 신경질이 나 있었고 마침대 한 명의 개발자가 그의 다마고치를 커피 잔속에 던져 버렸다. 피터 몰리뉴는 화가 났지만 곧 다마고치의 감정이입에 대해 생각했고 신에게 애완동물 같은 생물체를 던져 주면 어떻게 될까하는 구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블랙&화이트’의 크리처(Creature)다. 위대한 개발자는 유저가 다마고치에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이를 PC 게임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화이트’의 핵심이 크리처라는 설명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블랙&화이트’의 특징은 갓 게임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크리처에 있다. 기본적으로 유저가 신의 권능을 가지고 한 마을을 다스리며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저의 애완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처가 등장해 많은 변수를 준다. 크리처는 여러 종류가 마련돼 있으며 처음에는 작은 몸집에 어린아이와 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유저는 이 크리처를 다마고치처럼 성장시켜 하나의 인격체로 서서히 만들어 나가며 주민들의 유저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크리처는 유저의 성향에 따라 인간처럼 성격을 가지며 훈련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확립한다.

마을을 파괴하거나 비를 뿌려 옥토를 만들고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 것은 모두 유저의 몫이지만 크리처만의 능력으로 여기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또 다른 크리처와 전투도 벌일 수 있으며 유저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같은 독창적인 설정은 유저와 언론의 대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피터 몰리뉴의 이름은 대가의 반열에 곧바로 올려졌으며 많은 개발자들은 이 게임의 독창성에 머리를 숙였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험난한 길에서 훌륭한 작품을 빚어낸 열정에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이 작품 이후 계속해서 확장팩과 속편이 출시되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첫 작품처럼 많은 이슈를 몰고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블랙&화이트’는 착한 신과 악한 신, 중도의 길을 걷는 신을 유저가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도를 100% 지원했으며 크리처를 통해 현실 세계의 신과 인간, 종교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도록 만들었다.

많은 제작사와 개발자들이 히트작을 만들기 위해 유행을 타고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는 것에 비해 피터 몰리뉴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간 고집이 결국 ‘블랙&화이트’를 통해 빛을 발한 것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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