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냉장고 하나만 있으면 부자 소리를 듣던 때가 있었다. 손님이 오면 얼음을 꺼내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던 그 시절, 냉장고는 집안의 ‘전설’적인 존재였다. 거실이나 부엌에 있던 냉장고는 텔레비전과 더불어 집안의 기둥이었다. 냉장고가 있는 집은 특별한 집이었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먹던 아이는 특별한 아이였다.
냉장고가 다시 특별해지고 있다. 아파트 주방 한쪽에 김치냉장고가 자리잡더니 최근 웰빙 열풍을 타고 좀더 전문적인 냉장고가 가정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와인만을 담아두는 와인 냉장고가 나오더니, 화장품 냉장고, 반찬 냉장고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와인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칠레와 FTA가 체결된 이후 칠레산 와인이 싼 가격으로 들어오고, 여기에 호주산, 프랑스산, 미 캘리포니아산 와인 가격도 인하되면서 다양한 연령의 와인 마니아층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000대에 불과하던 와인 냉장고 시장은 올해 2만여 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산 중심이던 와인 냉장고 시장에 최근 국내 가전업체, 중소업체들이 가세하면서 매출이 작년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 와인 냉장고 가격은 100만원에서 300만원대로 다양하다. 업소용에서부터 가정용까지 그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와인 냉장고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와인 마니아층이 대부분 고소득층이라는 점이다. 구매력을 갖춘 집단을 마케팅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효과가 뛰어나다. 여기에 특정 와인 맛을 구분할 수 있는 탁월한 미적 감각도 주요 마케팅 소구대상이다. 와인 냉장고는 늘 6∼18℃를 유지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외부 온도변화에 민감한 와인 특성상 적정 온도 유지는 와인마니아에게는 필수 사항인 셈이다. 와인 냉장고가 소비자 계층을 파고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장품 냉장고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최근 업계에서 순식물성, 무방부제, 순금화장품, 양 태반화장품 등 고가의 화장품 등이 늘어나면서 일부 주부를 대상으로 화장품 냉장고 판매가 늘고 있다. 화장품 냉장고는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5개의 대기업과 1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난립해 있다. 여기에 중국산 저가 제품이 유입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다. 화장품 냉장고 가격은 10만원대부터 50만원대 사이로 비교적 저가에 공급된다. 용량은 5리터 사이에서 10리터 사이가 대부분이다.
화장품 냉장고는 냉각판 위치에 따라 간접냉각방식과 직접냉각방식으로 구분된다. 직접냉각방식은 화장품 냉장고 내부에 냉각판이 있으며 냉각효과가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간접냉각방식은 약간 공간을 두고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화장품 병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화장품 보관 적정온도는 8∼12℃로 약간 시원한 정도가 적당하다. 레티놀, 콜라겐 등 기능성 화장품은 고온에 치명적인데 화장품 냉장고는 이를 막을 수 있으며 동시에 박테리아 서식량을 50배 가량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레티놀과 콜라겐 함유 화장품은 저온 보관이 필수적이다. 레티놀은 지용성 비타민 A로 주름개선에 효과가 있는 제품. 원료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함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단백질로 구성된 콜라겐도 저온 보관이 필요하다. 저온 보관이 이뤄지지 않으면 썩기 때문이다.
업계는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가 김치 냉장고, 양문형 냉장고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으로 보고 있다. 와인 냉장고는 와인 마니아가 증가하고 있고, 화장품 냉장고는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가격이 인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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