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사랑한 과학자/ 리처드 험블린 지음/ 조연숙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하워드는 우리에게 선연한 정신으로 인류를 새롭게 할 유익한 가르침을 주네. 그것은 손으로 닿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그가 처음으로 얻어낸, 처음으로 정신력으로 붙잡은 것이네.’
괴테의 시집 ‘하워드를 위하여’에 수록된 시의 한 구절이다. 독일의 시성(詩聖)이 시집을 쓰면서까지 찬사를 보낸 하워드라는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사이언스북스가 펴낸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The Invention of Clouds)’는 구름의 명명법을 고안한 19세기 아마추어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루크 하워드는 영국 런던 플라우코트 거리의 평범한 약제사였지만 린네의 생물 분류학에 비견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구름 명명법과 분류법을 고안해내 현대 기상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구름 명명법은 막연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했던 당대의 기상학을 학문으로 재정비했다.
오랫동안 구름을 관찰했고 인간의 창조성을 구름에 빗댄 시를 짓기도 했던 괴테는 구름에 이름을 붙여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해 준 루크 하워드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하워드의 명명법과 분류법을 통해 구름이 상실의 이미지를 벗어나 찬란한 형상으로 빛나게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워드는 1772년 영국 런던에서 철제기구 제조업자인 로버트 하워드의 아들로 태어났다. 까다롭고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서 자라온 그는 퀘이커 교도답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창밖으로 뻗어 있는 구름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하워드의 연구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구름의 비밀을 벗겨 냈다. 그는 데카르트처럼 ‘구름은 물방울과 빙정으로 형성되며 급냉각된 낮은 대기를 거쳐 상승하면서 기온 하강을 겪어 응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발 더 나아가 ‘구름에는 세가지 기본 과가 있어 그 세가지 과를 통해 모호한 구름을 명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은 구름의 명칭은 형태의 외적 특징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뒀다. 또 각 나라 학자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권운(Cirrus: 섬유, 머리카락), 적운(Cumulus: 더미, 퇴적), 층운(Stratus: 층, 판) 등 라틴어에 기반했다. 구름은 덩굴손(tendrils), 더미(heaps), 층(layers)으로 나뉘었고 이 세가지 형태는 구름 모양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하워드는 구름에 이름을 붙여 줌으로써 구름의 형태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불명확했던 무엇인가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와 세계를 둘러싼 하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그의 통찰력은 구름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줬고 이로 인해 우리는 구름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됐다.
그의 논문 ‘구름의 변형에 관하여’는 빠른 소문을 거쳐 1803년 가을 무렵, 이미 대중의 인지도를 확보한다. 하워드가 이 위대한 발견을 통해 얻어낸 것은 플라우코트 아카데미의 회원 자격뿐이었다. 그러나 구름의 종류에 관한 그의 논문은 괴테나 셸리 같은 동시대인들의 존경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기반으로 했던 당대 기상학의 국면도 바꿔 놓았다. 막연한 관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상 예측의 시대에 한발 다가서게 된 것이다.
그의 이론은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국제구름도감’의 모습으로 현대 기상학의 보편적인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하워드는 1864년 사망할 때까지 끊임없는 찬사를 받았으나 언제나 이를 곤혹스러워 했고 자신보다는 구름 그 자체가 주목받기를 원했다. 그가 항상 원했던 것은 명예나 찬사가 아니라 구름을 관측하는 관찰자의 모습이었다.
스케치북과 연필만으로 구름을 분류하고 연구한 하워드와 달리 현대 기상학자들은 슈퍼컴퓨터와 복잡한 이론의 힘을 빌어 기후 현상을 연구한다. 그렇다고 현대 기상학이 18세기의 그것보다 빈곤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구름 명명법과 분류법을 고안해 낸 아마추어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삶과 업적을 중심으로 현대 기상학의 성립 과정과 구름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훑어보게 해 주는 책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는 급격한 기후 변동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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